조성진의 두 손은 자유롭게 건반 위를 뛰어놀았다. 연주하는 내내 ‘루바토(rubato·자유로운 템포로)’를 양껏 펼쳤고, 강세 조절에도 개성을 녹였다. 있는 힘껏 건반을 내리치려고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가 빚은 선율은 철창을 벗어난 새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그럴 만했다. 쇼팽 콩쿠르 이후 6년 만에 쇼팽 레퍼토리를 다시 연주했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는 쇼팽이 자신과 같은 나이 때 썼던 곡을 연주하며 자신에게 채워진 족쇄를 부숴 버렸다. “(쇼팽) 콩쿠르에선 긴장감 때문에 경직된 채 연주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던 공연 전 인터뷰 그대로였다.
쇼팽 콩쿠르 본선 3차 경연에서 그가 연주했던 ‘스케르초 2번’의 선율은 청아했지만 과감하진 못했다. 안정적으로 지시문을 해석했고 연주는 섬세했다. 이날 공연에선 선율 전체가 포르티시시모(fff·아주 강하게)로 점철됐다. 조성진은 아주 강하게 건반을 하나씩 눌렀지만 거칠게 들리진 않았다. 왼손과 오른손의 세기를 달리하며 강하지만 부드럽게 연주한 결과다. 기교도 일취월장했다. 악보 위의 빼곡한 음표들을 유려하게 연결하는 아르페지오를 극적으로 구사했다. 난도 높은 기법이지만 실수는 없었다. 이슬방울이 연잎 위를 구르듯 선율들이 관객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첫 곡인 레오시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절제력이 돋보였다. 망국의 슬픔을 아로새긴 작품이지만 신파로 해석하지 않았다. 물결이 일렁이듯 선율들을 잔잔하게 퍼트렸다. 음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모리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도 원숙하게 연주했다. 조성진은 길고 짙은 울림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울림을 키운 덕에 선율들이 한 층씩 쌓아 올려졌고, 음색이 두터워졌다.
네 곡의 쇼팽 스케르초(해학곡)로 공연장 분위기는 절정으로 향했다. 쇼팽의 스케르초는 주선율이 변덕스러워서 잘못 해석하면 쇼팽 애호가의 비난이 쏟아진다. 우울한데 해학적이고, 서정적이면서 공허하다. 조성진은 쇼팽이 20대부터 쓰기 시작한 스케르초를 명료하게 연주하며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 조국이 처한 비극 앞에선 무력했던 쇼팽의 처지를 공허한 농담처럼 들려줬다.
조성진은 공연의 마지막까지 완벽을 추구했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쇼팽의 ‘혁명’을 앙코르 곡으로 선사했다. 앞서 보여준 광기 대신 청명한 선율이 공연장을 채웠다. 관객은 황홀경에 빠진 듯 기립했고, 박수를 보냈다.
조성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무대였다. 로비에서는 조성진의 얼굴이 있는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관객이 줄을 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공연장을 찾아 조성진의 연주를 감상했다.
조성진은 8일 아트센터인천을 거쳐 여수 예울마루(1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12일), 부산시민회관(16일) 등으로 전국 투어를 이어간다. 이달 18일에는 서울로 다시 돌아와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피날레 공연은 네이버TV를 통해 유료로 생중계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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