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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배우로서의 본업은 물론 교수, 연출가, 문화예술기업 경영인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2011년께 한국뮤지컬협회 2대 이사장에 선출되며, 충무아트홀에 재직 중이던 나와의 인연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활성화시키고 지원해 나가기 위해 의기투합하던 때다. 나의 첫 기억 속 모습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는 공연과 문화,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가득했으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선배였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철저한 자기관리, 문화 정책에 대한 소신과 혜안을 가진 그는 늘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역할을 찾는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화려한 유년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만, 검소하고 소탈한 실제 그의 모습은 소박한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존경하는 선배이자 나의 롤 모델로 자리하게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무사히 끝낸 직후, 그에게 느닷없는 시력 저하가 찾아왔다. 주변 사람 모두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꿈을 꿨다. 2년 전쯤 시력을 잃어가는 그를 걱정하던 내게 그가 찾아와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이제 노역(老役)에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무대에서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마침 국립정동극장에서는 ‘배우’를 중심으로 한 기획 연극을 준비 중이었고, 그렇게 송승환 배우와 함께 2020년 연극 ‘더 드레서’의 막을 올렸다. 내 개인적 기억 속의 그는 공연 제작자이자 연출가이자 문화예술기업의 경영인이지만, 사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배우다.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무대에서 투혼을 불사하는 그는 천생 배우다.
연극 더 드레서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나온다. “가끔 내 얘길 해줘. 배우는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니까.” 또 한 번 그가 배우로서 관객에게 어떤 기억으로 존재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비단 배우뿐 아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다른 이의 기억 속에 존재할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은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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