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매각 카드 살아있나…이사회 "PEF에 매각할 수 있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1-09-09 08:12   수정 2021-09-09 08:21



올 초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인수제안을 받았던 일본 대표기업 도시바의 매각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바 이사회는 8일 성명을 내고 "회사의 상장폐지가 실현가능한 방안인지 검증하고 있다"며 복수의 투자펀드 등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바 이사회는 "회사의 비상장화는 전략적 선택지의 하나"라며 "무엇이 최적의 방안인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도시바는 지난 4월 영국계 PEF인 CVC캐피털파트너스로부터 약 2조3000억엔(약 24조3467억원)에 인수제안을 받았다. CVC는 도시바 지분 100%를 인수해 주식시장에서 상장을 폐지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CVC 뿐 아니라 세계 4대 PEF 가운데 하나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미국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캐나다 인프라 전문펀드 브룩필드 등도 도시바에 인수제안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구루마다니 노부아키 당시 도시바 사장이 이해상충 논란으로 갑자기 사임하고, 기존 경영진이 일본 대표기업의 상장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매각은 흐지부지 됐다. 지난달 도시바의 신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쓰나가와 사토시 사장도 상장폐지를 선택지에서 배제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상장사로서의 메리트를 살리는 것이 기업가치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불과 한 달여 만에 도시바 최고 경영진이 상장폐지 가능성을 또다시 언급함에 따라 글로벌 PEF가 도시바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도시바 이사회가 행동주의 펀드의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재편된 점도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지난 6월 도시바의 조사 의뢰를 받은 외부 변호사단(제3자 위원회)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경영진의 인사안과 관련해 작년 여름 도시바 정기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 주주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압력행사에 연루된 2명의 이사를 포함해 4명의 고위 경영진을 교체했다.

도시바는 2017년 6000억엔 규모로 실시한 증자를 통해 60여곳의 해외 행동주의 펀드를 주주로 맞아들였다. 2년 연속 자본잠식으로 인한 상장폐지를 면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부터 도시바 경영진과 행동주의 펀드 주주들은 회사의 여유자금 사용처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분쟁을 벌이고 있다.

2017년 증자에 참여한 행동주의 펀드가 보유한 지분율은 지금도 25% 이상이다. 도시바의 1~2대 주주인 홍콩계 에피시모캐피털매니지먼트(보유지분 9.9%)와 3D인베스트먼트(7.2%) 모두 매년 주주총회에서 경영진과 각을 세우는 행동주의 펀드다.

일부에서 CVC의 인수제안을 반긴 것은 펀드 주주와의 오랜 대립이 회사 경쟁력을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들도 인수가격이 높다면 매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CVC로부터 인수제안을 받을 당시 3830엔이었던 도시바 주가는 4800엔 안팎까지 올랐다. 2대주주인 3D인베스트먼트는 작년 총회에서 도시바의 적정주가를 6500엔 이상, 시가총액을 3조엔으로 평가했다. CVC가 제안했던 것처럼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얹어줄 경우 주당 인수가격은 6240엔이다. 3D인베스트먼트의 요구액을 거의 맞출 수 있는 셈이다.

에너지와 인프라, 엘리베이터 등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부 매출이 전체의 56%를 차지하는 도시바는 PE들이 선호하는 매물이다.

구루마다니 전 사장 재임기간 동안 의료기기 사업부와 백색가전 사업부, 메모리반도체 사업부(현 키오시아) 등을 매각하고, 7000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사업재편도 마무리 단계다. 성장 가능성도 밝다. 도시바는 양자컴퓨터 시대의 필수기술인 양자암호 관련 특허(104건)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세계 2위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키오시아 지분 41%를 보유한 점도 글로벌 PEF들이 도시바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미중 마찰의 여파로 지난해 상장(IPO)을 연기했을 때 키오시아의 기업가치는 1조5000억엔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기업가치가 3조엔 가까이까지 치솟았다는 분석이다.

현재 낸드플래시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키오시아 인수를 추진 중이다. 웨스턴디지털은 200억달러(약 23조3000억원)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홍보 담당자는 "아직까지 비상장화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 등을 투자펀드로부터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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