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여동에 사는 박수연 씨(32)는 자타공인 ‘빵순이’다. 주말마다 ‘빵지순례’를 떠난다. 최근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코로나19로 외출을 못 하게 되자 ‘홈베이킹’을 시작했다. 주말마다 그의 열 평 남짓한 자취방은 베이커리 카페로 변신한다. 빵을 굽는 오븐은 없지만 ‘자취생의 필수품’ 에어프라이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빵에 곁들일 커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캡슐 커피머신도 구입했다. 박씨는 “코로나19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홈베이킹 세계에 눈을 떴다”며 “에어프라이어만 있으면 누구나 ‘방구석 제빵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홈베이킹은 품이 많이 드는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였다. 밀가루를 쫄깃한 반죽으로 만드는 첫 단계부터 고난이 시작된다. 반죽을 만들기 위해 휘젓고, 치대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홈베이킹이 웬만한 운동보다 팔 근육을 키우는 데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이해된다. 베이킹 도구를 갖추는 것도 만만치 않다. 비싼 오븐 가격에 겁을 먹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높은 홈베이킹의 문턱은 에어프라이어가 보급되면서 낮아지기 시작했다. 오븐과 비슷한 원리로 뜨거운 바람을 순환시켜 음식을 조리하는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하면 오븐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빵을 구울 수 있다. 최근에는 ‘2세대 에어프라이어’로 불리는 오븐형 대용량 에어프라이어가 값싼 가격에 나와 홈베이킹에 도전하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
냉동 생지의 대중화도 홈베이킹 유행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냉동 생지는 밀가루 반죽을 빵 모양으로 만들어 냉동 상태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냉동 생지만 있으면 더 이상 반죽을 치대느라 땀을 뺄 필요가 없다. 에어프라이어에 냉동 생지를 넣고 돌리기만 하면 갓 구운 빵이 탄생한다.
냉동 생지로 만들 수 있는 빵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크루아상과 치아바타는 물론 스콘, 마들렌 등도 냉동 생지 형태로 판매한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냉동생지의 B2B(기업 간 거래) 판매 비중은 95%에 달했지만 올 들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판매 비중이 40% 수준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에어로프레스는 주사기 모양의 커피 추출 기구로, 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휴대가 간편해 캠핑족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주전자 모양의 모카포트는 수증기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한다. 기압 차를 이용해 커피를 뽑아내는 사이폰은 원두의 복합적인 향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반드시 브루잉 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스턴트커피도 스페셜티 커피를 사용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고급스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홈카페가 확산하자 최근 스페셜티 커피업계도 인스턴트커피를 내놓고 있다. 인텔리젠시아, 리추얼 등 샌프란시스코 커피를 인스턴트로 만들어 유명해진 서든커피 등이 대표 주자다. 드립백도 미니멀 홈카페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발맞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두를 담은 필터를 컵에 꽂아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드립백은 1990년대 초 일본에서 개발돼 한국으로 전파됐다. 인스턴트커피는 고도의 기술력과 설비 투자를 통해 제작해야 하지만 드립백은 소규모 공정으로도 만들 수 있다. 이에 따라 특색있는 드립백을 제작해 판매하는 동네 카페가 늘고 있다.
커피앳웍스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집에서 간편하게 커피를 즐기는 이가 많아지면서 드립백 판매량이 매달 1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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