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도공이 빚은 옹기…가고시마의 명주를 빚다[명욱의 호모 마시자쿠스]

입력 2021-09-09 17:33   수정 2021-09-10 08:47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증류식 소주로 고구마 소주를 빼놓을 수 없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의 약 20%를 소주 제조에 사용한다. 와인용 포도 품종처럼 백고구마, 자색 고구마, 오렌지색 고구마 등 다양한 품종으로 맛과 향을 낸다. 고구마 소주의 대표적인 생산 지역은 일본 본토 최남단의 가고시마현. 일본 고구마 생산의 30%를 담당하는 주산지다.

가고시마 고구마 소주는 대한해협에 있는 대마도, 이키섬과 달리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중국과 왕래가 많았던 오키나와 유래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도 우리와 인연이 있다.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곡물, 누룩, 물, 그리고 그것을 담아 발효 및 숙성하는 옹기다. 가고시마의 소주는 전통적으로 옹기에 담아 발효 및 숙성을 한다. 흙으로 빚은 옹기는 내부 온도를 유지하고, 안정적인 발효와 숙성에 도움을 줘 좋은 맛을 내도록 한다. 이곳의 옹기문화가 우리 역사와 연결돼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납치된 도공들이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도자기 전쟁으로도 부른다.

일본이 도자기에 사활을 건 이유가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 다도가 정립됐고, 차(茶)를 담을 도기가 필요했다. 중국의 도기는 너무 화려했고, 소박한 미를 지닌 조선의 도기가 탐났다. 수백여 명의 조선인 도공을 납치한 배경이다.

가고시마 다이묘(大名)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남원성 외곽에서 살던 도공 40여 명을 집단으로 납치한 가고시마로 데리고 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평의, 김해, 그리고 심당길이다. 당시 시마즈는 가고시마의 나에시로가와에 조선인 집단촌을 만들었다. 메이지유신 전까지 이곳에서 한국적인 옹기와 도자기를 생산하도록 했다. 그들이 만든 도자기는 네덜란드로 수출해 막부의 막대한 수입원이 됐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해 유럽인에게 큰 감명을 주기도 했다. 당시 도기 문화는 ‘사쓰마도기’라 불렸다. 소주의 숙성 옹기도 사쓰마도기의 영향을 받았다.

사쓰마도기는 지금도 한국의 풍속을 그대로 지킨다. 심당길의 15대 후손인 심수관가(沈壽官家)의 가마가 한국의 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박평의로부터 이어온 아라키도요(荒木陶窯)의 돌림판은 한국 방식인 왼쪽 돌림판을 사용한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내전에 휩싸였다. 당시 선봉장으로 참전했던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의 장수들은 본인 또는 직계 가족이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멸문지화를 당한다.

2015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가고시마를 다녀왔다. 고구마를 고부가가치로 활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당시 일본인 도슨트가 고구마 소주 숙성 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도공 덕분에 가고시마 소주가 더욱 발전했다고.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한국인에게 죄송하다고.

명욱 <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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