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롱 변호사 "억울한 火 풀어주려 판사의 길 대신 창업"

입력 2021-09-09 17:44   수정 2021-09-09 23:34

최근 언론을 통해 이목을 끈 집단소송이 진행되도록 힘을 보탠 리걸테크(법률+기술) 스타트업이 법조계에서 화제다. 주인공은 이른바 ‘공동소송 플랫폼’을 운영하는 ‘화난사람들’.

수백 명의 환자가 발생한 ‘경기 분당 김밥집 식중독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 플랫폼을 이용해 집단소송을 추진했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방한 ‘노쇼’ 집단소송을 진행한 변호사도 화난사람들을 이용했다.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최초롱 대표(34·사진)는 변호사(사법연수원 45기)다. 고려대 법대 05학번으로, 2013년 사법고시에 전체 7등으로 합격했다. 수료할 때 성적도 상위 10% 안에 들었다. 연수원에서 상위권이 주로 가는 판사에 도전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런데도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로서의 안정적 삶을 포기하고, 정글과도 같은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들였다. 9일 서울 노량진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학생 때부터 법조인 생활을 할 때까지 언제나 마음속에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온라인에 모여 속상한 일을 성토하는 것을 보고 이들의 ‘화’를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 벤처1세대 시절 정보기술(IT) 회사에서 투자유치 업무를 했던 남편도 그의 이런 생각을 지지했다. 최 대표의 남편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보라”며 개발자를 소개해주는 등 다방면으로 그의 창업을 도왔다.

최 대표는 2018년 8월 화난사람들을 창업했다. 일반인이 평소에 겪은 각종 사건·사고를 화난사람들 사이트에 올리면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모인다. 사이트에 가입한 변호사들이 이를 보고 수임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화난사람들은 집단소송에 필요한 전산 프로그램을 변호사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제공한다. 최 대표가 개발자 한 명과 함께 시작한 이곳은 3년여 만에 직원이 8명으로 늘었다. 일반 회원은 18만 명, 변호사 회원은 200여 명에 달한다.

화난사람들에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집단소송이 개시된다. 화난사람들 게시판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제보를 본 변호사가 집단소송을 시작하거나,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기획한다. 화난사람들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변호사에게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한 침대회사 제품의 라돈 검출 사건, BMW 차량 화재사고 등의 집단소송이 화난사람들을 통해 진행됐다.

집단소송 시장이 점점 커짐에 따라 화난사람들은 사이트의 전면 리뉴얼을 추진 중이다. 일반인끼리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시판 형식의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허위 광고에 대한 신고부터 각종 진정 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떤 주제라도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다. 같은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100명 모이면 화난사람들이 직접 공론화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더해 다양한 ‘분쟁해결 선례’ 검색 시스템도 선보일 예정이다. 분쟁해결기구 사이트마다 흩어져 있는 선례를 화난사람들 한 곳에서 검색해 바로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대표는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의 일을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연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화난사람들이 출동합니다’란 구호를 앞세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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