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의 오픈마켓에 대한 두 가지 시각 [박종관 기자의 食코노미]

입력 2021-09-13 09:30   수정 2021-09-13 09:49


마켓컬리의 핵심 경쟁력은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는 미술관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서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에서 착안했습니다. 마켓컬리는 세상의 수 많은 제품들 가운데 질 좋은 제품을 자체적으로 선별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입니다. 매주 금요일 전 직원이 모여 입점 상품을 선정하는 '상품위원회'를 통과한 제품만 마켓컬리 앱에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는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이득입니다. 마켓컬리의 전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품질을 검수한 상품만 앱에 오르기 때문에 품질이 보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자는 상품 구매 전 여러 제품을 비교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덜게 됩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사과를 사려면 여러 판매자의 상품을 클릭해 원산지와 당도, 가격 등을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며 '결정 장애'에 시달려야 합니다. 마켓컬리에선 컬리가 추천해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됩니다.

김슬아 컬리 대표도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의 중요성을 그간 꾸준히 강조해 왔습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김 대표와의 대담을 기반으로 쓴 책인 《마켓컬리 인사이트》에서 김 대표는 "'100만 개의 상품을 보유해야만 좋은 유통사인가'라고 묻는다면 '낭비'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름과 브랜드만 조금씩 다른 상품들을 여럿 진열하기보다는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상품을 선별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마켓컬리의 행보를 보면 이 같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켓컬리는 지난 6일 내년 상반기 오픈마켓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오픈마켓은 G마켓과 옥션처럼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열려있는 인터넷 중개몰을 말합니다. 오픈마켓의 가장 큰 문제는 상품의 질 관리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판매할 수 있는 장터이다 보니 질 좋은 상품이 올라오면 다행이지만 질이 떨어지는 상품이 판매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수 많은 제품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은 소비자의 몫입니다. 마켓컬리가 지금까지 고수해 온 상품 큐레이션 서비스와는 다른 모델입니다.

마켓컬리는 왜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오픈마켓 서비스에 뛰어들었을까요. 컬리 측은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업계에선 내년 상반기 상장을 앞둔 '몸집 불리기'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픈마켓으로 소비자를 더 불러 모아 매출을 키워 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겠다는 것이지요. 최근 경쟁이 치열해진 e커머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린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쿠팡이 신선식품 배송서비스 '로켓프레시'를 강화하고, 신세계그룹이 인수합병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11번가가 아마존과 손을 잡는 등 e커머스 시장은 그야말로 격변기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업이 성장을 위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컬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심입니다. 2015년 마켓컬리가 처음 출범할 당시 구색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컬리에서 파는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쿠팡과 이마트 대신 마켓컬리를 찾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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