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12월 인수한 로봇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3총사’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선보였다.
10일 온라인으로 열린 시연회에서 ‘로봇 개’로 불리는 4족 보행 로봇 ‘스폿’은 머리 쪽에 달린 팔이 앞에 있는 가방을 집어들고 움직였다. 사람의 팔 같은 움직임이었다. 회사가 새롭게 선보인 ‘스폿 암(spot arm)’이다. 물류 로봇 ‘스트레치’는 스스로 20㎏ 넘는 상자를 들고 옮기는 모습을 시연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주변 상황을 스스로 인식해 걷기는 물론 뛰기와 점프, 물구나무서기 동작도 가능하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은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라고 분석했다. 현대차가 이 회사 지분 80%를 8억8000만달러(약 1조원)에 인수할 당시 정의선 회장도 사재 2400억원을 출연해 지분 20%를 확보했다.
로봇업계에서는 스폿이 자동차 생산공장과 건설현장 같은 장소를 자율적으로 다니면서 설비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고, 침입자가 있으면 발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수백 기의 스폿이 글로벌 산업현장에 투입됐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내년 판매를 시작할 스트레치를 현대차그룹의 물류산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로버트 플레이터 최고경영자(CEO)는 “스트레치는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옮겨야 하는 박스와 피해야 하는 장애물을 알아서 구분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에 800개의 박스를 옮길 수 있다. 스트레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물류 시스템의 마지막 단계에 투입될 전망이다. 플레이터 CEO는 “현대차그룹과 물류 영역 관련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현대차그룹의 기술을 활용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대량 생산 역량을 활용하면 로봇 제품의 생산단가를 낮추거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자율주행 기술과 배터리 관련 기술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
손더스 CTO는 “아틀라스는 아직 연구 플랫폼이고 당장 상용화하기는 힘들다”며 “단순히 걷고 뛰는 등의 동작만 하는 게 아니라 팔을 이용해 섬세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로봇으로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틀라스를 기반으로 고성능 로봇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계에서는 인명 구조, 안내 서비스 등의 분야에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플레이터 CEO는 테슬라 등이 잇따라 로봇 관련 계획을 발표하는 상황에 대해 “더 많은 회사가 로봇산업에 뛰어들기를 기대한다”며 기술력으로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면 산업 전체가 커질 것이고, 우리는 이미 선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샤오미의 4족 보행 로봇 ‘사이버독’에 대해서는 “스폿은 고도화된 소프트웨어와 센서가 장착돼 주변 지형지물을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데, 이는 경쟁사가 구현하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99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학내 벤처로 창립한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로봇을 내놨다. 이들의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4년 내놓은 4족 보행 로봇 ‘빅도그’는 소음이 컸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움직임도 단조로웠다. 하지만 스폿은 소음도 없는 데다 움직임은 실제 개보다 민첩하다. 주변 환경을 파악해 스스로 피하는 것도 가능하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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