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소연 시인(39·사진 왼쪽)이 전북 고창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주영태 씨(47·오른쪽)와 함께 에세이 《고라니라니》(마저 펴냄)를 출간했다. 최근 서울 성산동의 동네서점 조은이책에서 열린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이 시인은 “먼 곳에 사는 두 사람이 나이 차도 나고, 주변 환경도 다르지만 친구가 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첫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걷는사람)를 출간한 이 시인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 독자가 뽑은 ‘2020 한국 문학의 얼굴’로 선정되는 등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책은 주씨가 직접 찍은 시골 풍경과 농산물, 생물들 사진과 함께 이 시인과 농부 주씨가 번갈아 쓴 글을 담았다. 이 시인은 “농부 친구가 도정한 쌀 등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계속 선물처럼 보내왔다”며 “처음에는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시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통해 풍요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책 속 사진의 쌀, 꽃, 토마토, 새, 풀잎, 고추, 고라니 등은 모두 농부 주씨의 손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손의 일기’다. 이 시인은 책에 이렇게 썼다. “내가 잃어버린 세계가 그의 손바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마음은 뭘까, 생각하다가 그냥 손바닥에 대해 시를 써야지, 했다. 그리고 아직 못 썼다. 박사 논문도 써야 하고, 시도 써야 하는데 자꾸 그 손바닥만 생각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어느 소설가의 집. 그곳에서 주씨는 장작 패는 얘기를 했다. 며칠 뒤 실제로 장작 패는 영상을 찍어 시인에게 보내줬다. 시인은 그걸로 ‘장작 패는 사람’이란 시를 썼다. 농부는 “이것이 시 맞당가” 하며 짤막한 글을 보냈다. 글이 오가고 사진이 오갔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됐다.
사투리로 쓰인 주씨의 글에선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매력이 드러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주 작가라 부른다”며 “그래도 글쓰는 것보다 농사가 훨씬 쉽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책은 지난 7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먼저 공개돼 목표금액(100만원)의 1038%를 채웠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을 쓴 소설가 정세랑 씨는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맛있는 에세이는 오랜만”이라며 “짚풀로 구워낸 서리태 맛이 난다”고 평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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