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시인과 시골 농부의 만남…농부에게서 자연을 배웠죠"

입력 2021-09-13 17:54   수정 2021-09-14 00:48

“도시 시인과 시골 농부가 만나 시인은 자연을 배우고 농부는 시를 배웠죠.”

‘2014 한경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소연 시인(39·사진 왼쪽)이 전북 고창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주영태 씨(47·오른쪽)와 함께 에세이 《고라니라니》(마저 펴냄)를 출간했다. 최근 서울 성산동의 동네서점 조은이책에서 열린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이 시인은 “먼 곳에 사는 두 사람이 나이 차도 나고, 주변 환경도 다르지만 친구가 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첫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걷는사람)를 출간한 이 시인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 독자가 뽑은 ‘2020 한국 문학의 얼굴’로 선정되는 등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책은 주씨가 직접 찍은 시골 풍경과 농산물, 생물들 사진과 함께 이 시인과 농부 주씨가 번갈아 쓴 글을 담았다. 이 시인은 “농부 친구가 도정한 쌀 등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계속 선물처럼 보내왔다”며 “처음에는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시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통해 풍요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책 속 사진의 쌀, 꽃, 토마토, 새, 풀잎, 고추, 고라니 등은 모두 농부 주씨의 손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손의 일기’다. 이 시인은 책에 이렇게 썼다. “내가 잃어버린 세계가 그의 손바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마음은 뭘까, 생각하다가 그냥 손바닥에 대해 시를 써야지, 했다. 그리고 아직 못 썼다. 박사 논문도 써야 하고, 시도 써야 하는데 자꾸 그 손바닥만 생각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몇 해 전 어느 소설가의 집. 그곳에서 주씨는 장작 패는 얘기를 했다. 며칠 뒤 실제로 장작 패는 영상을 찍어 시인에게 보내줬다. 시인은 그걸로 ‘장작 패는 사람’이란 시를 썼다. 농부는 “이것이 시 맞당가” 하며 짤막한 글을 보냈다. 글이 오가고 사진이 오갔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됐다.

사투리로 쓰인 주씨의 글에선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매력이 드러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주 작가라 부른다”며 “그래도 글쓰는 것보다 농사가 훨씬 쉽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책은 지난 7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먼저 공개돼 목표금액(100만원)의 1038%를 채웠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을 쓴 소설가 정세랑 씨는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맛있는 에세이는 오랜만”이라며 “짚풀로 구워낸 서리태 맛이 난다”고 평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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