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재무 데이터 수집, 뉴스 검색 등 단순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 업무를 맡았던 신입사원들의 퇴사가 잇따르자 업무를 바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불거진 인력난이 신입사원 훈련 풍경도 바꾸고 있다.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바클레이 모엘리스 등 투자은행들은 고객 배포자료인 피치북과 기업가치평가모형 제작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 업무를 담당해온 신입사원들이 다른 일에 집중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댄 디스 골드만삭스 투자은행부문 공동책임자는 "젊은 직원들이 이전보다 의미있는 일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게 자동화의 목표"라고 했다.
투자은행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은 기업 뉴스 등을 검색해 피치북을 만들고 관심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의미있는 수치를 골라내는 업무 등을 담당했다. 발표 자료 속 표의 숫자를 업데이트하는 것도 이들의 업무다. 투자은행 신입 사원 업무의 60~65%가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기간 원격 근무가 확산하고 각종 회의가 늘면서 투자은행 신입사원이 맡아야 할 업무는 폭증했다. 데이비드 에릭슨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1주일에 8~10번 정도 하던 발표가 하루가 8~10개로 늘었다"며 "코로나19 유행 후 업무 속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과중한 업무부담을 못 이겨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이 속출하자 월가 투자은행들은 이들의 초봉을 8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올렸다. 임금 인상도 퇴사 행렬을 막진 못했다. 투자은행들이 자동화 작업에 속도는 내는 배경이다.
골드만삭스는 100여개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발표 자료에 실린 차트를 최신 수치로 자동 업데이트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바클레이도 저연차 직원들이 수행하던 작업들을 자동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축했다. 모엘리스는 피치북 제작에 드는 업무 부담을 줄이는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자동화를 통해 궁극적으론 투자은행의 인력 수요도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웰스파고의 마이크메이요 금융 애널리스트는 "기술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금융업계의 인력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며 "더 적은 자원으로 많은 일을 하라는 원칙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자동화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기업들도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을 통해 데이터의 중요성을 스스로 익히는 훈련을 해왔는데 점차 이런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멘토링이 점차 줄어드는 것도 신입사원 이탈 원인으로 꼽혔다.
데이비스 스토웰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선임 직원이 후배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면서 신입사원은 그들이 잘못했을 때만 선배를 만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신입사원들은 기계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