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가 없는 혁신 저해 행위입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구글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직접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등 스마트기기 제조업체들의 포크OS(안드로이드 변형 운영체제) 사용과 개발을 막은 구글의 행위를 이같이 규정했다. 스마트기기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서비스와 선택을 제공하기 위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말고도 여러 포크OS를 쓰려 했지만, 구글이 이를 방해해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OS 개발과 시장경쟁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최근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을 겨누던 공정위의 제재 칼날이 글로벌 기업으로까지 향하면서 전방위적인 플랫폼 규제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정위는 AFA의 이 같은 내용이 구글 안드로이드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포크OS의 출현과 시장 진입을 차단했다고 판단했다. 개발업체들이 OS를 새로 개발해도 이 OS를 적용해줄 제조업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실제로 모바일 OS를 개발한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가 거래처를 찾지 못해 결국 OS사업에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기기 제조업체들은 구글과의 AFA가 부당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구글이 제조업체들과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계약’ 조건으로 AFA 체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는 일반 소비자가 안드로이드 OS에서 앱을 내려받는 창구인 구글플레이스토어와 구글맵, 유튜브 등 구글의 주요 앱묶음(GMS)을 제공받는 내용의 계약이다. 이 계약을 맺지 않으면 제조업체로선 스마트폰을 만들어도 소비자가 주로 사용하는 앱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AFA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구글은 또 최신 버전의 안드로이드를 시장에 공개하기 6개월 전에 미리 제조업체에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사전접근권’의 조건으로도 AFA 체결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번 구글에 대한 제재 결정이 AFA 조항에 철퇴를 가했다는 점에서 EC의 제재와 비슷하다면서도 제재 범위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EC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의 OS에 대해서만 제재한 반면 이번 결정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스마트워치 등 모든 스마트기기의 OS를 상대로 AFA의 부당한 내용을 수정하도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모바일 OS 시장은 이미 성숙된 시장이고 진입장벽도 높아 (제재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도 “차세대 플랫폼 경쟁이 시작되고 있는 기타 스마트기기 분야에선 AFA의 제약이 없어진다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들이 보다 다양한 혁신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에선 조 위원장의 기대와 달리 기타 스마트기기 분야에서 구글 제재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이미 AFA와 무관하게 타이젠 등 별도의 OS를 만들어 스마트워치에 적용해봤지만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를 최근 정부가 고삐를 바짝 죄는 플랫폼 규제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2016년부터 구글의 혐의를 조사해온 공정위가 하필 플랫폼 기업 규제가 심해지고 있는 이때 구글 제재 방침을 발표한 배경이 의심스럽다”며 “카카오 등 국내 IT 기업만을 과도하게 옥죈다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구글 제재 방침을 내놓은 것 같다”고 했다.
정의진/서민준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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