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문에서 ‘재정 위기를 이유로 임금 저하 및 강제 구조조정이 없도록 하고, 노사협의체를 구성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부터 그렇다. 공사 측이 인력 10% 감축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반발에 없던 일로 한 것이다. 노조가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서울시에 제동을 걸었다”고 자평하는 걸 보면 추후에라도 수용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하다. 공사 노사는 이런 합의문을 들고 행정안전부에 공사채 추가 발행을 요청하겠다고 한다. 구조적·고질적 문제는 덮어두고 ‘빚폭탄’을 미래로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빚이 있으면 가족들이 허리띠부터 죄는 게 상식인데, 이런 ‘몰염치’가 어디있나 싶다.
물론 서울 지하철이 ‘빚더미’가 된 데는 정부와 서울시 책임도 크고, 한 해 3400억원에 달하는 노인 등 무임승차도 한 원인이다. 2017년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합병 이후 적자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져 지난해 1조1137억원을 기록했고, 올해엔 1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공사채 발행잔액은 지난 6월 말 2조380억원에 달했고, 기업어음(CP)까지 합치면 총부채가 2조758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공사 감독권을 가진 서울시는 그동안 구조조정과 요금 인상 등 껄끄러운 문제는 외면했다. 정부 관련 부처들도 운임 조정 문제 등을 회피하고, 폭탄 돌리듯 서울시로 떠넘기면서 모두가 ‘NIMT(내 임기 중엔 불가)’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만성 적자임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였고, 고용세습과 채용비리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래놓고 적자 원인을 ‘무임승차’ 탓으로만 돌리며 정부에 기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구 할 것 없이 지하철 부실덩어리를 초래한 ‘공동정범’이라 할 수 있다. 행안부는 공사가 자구노력을 하지 않으면 공사채 발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당초 약속을 지켜야 한다. 모두가 ‘내 탓’이라는 자세가 아니고선 부실 지하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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