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는 어떤 술을 마셨을까.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 힌트가 나온다. 바로 햅쌀로 술을 빚었다는 것. 이것을 새로울 신(新), 벼 도(稻), 술 주(酒) 하여 신도주라고 불렀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보졸레 지방에서 나오는 햇와인인 보졸레 누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숙성의 깊은 맛보다는 원료의 신선함을 추구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이 신도주(新稻酒)는 제주로 사용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엔 보다 다양한 제주가 등장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술이 초헌례(初獻禮)라고 불리는 막걸리다. 두 번째는 아헌례(亞獻禮)라고 불리는 동동주, 그리고 마지막 종헌례(終獻禮)에 등장하는 술이 맑은 술인 청주다. 막걸리에서 청주 순서로 등장하는 이유는 가장 단기간에 발효시켜 마시는 술이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청주는 오랜 숙성을 통해 향과 맛이 깊어지는 특성이 있다.
여기에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없다. 모두 발효주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면 모두 한자리에 앉아 음복해야 하는데 도수가 높은 소주는 가족이 다 함께 마시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정종은 유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고문헌에서 나온 이름이 아니라 일본 사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본식 청주는 일본 내에서는 세이슈(せいしゅ·酒)라고도 불린다. 정종(正宗)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으면 청주인 세이슈와 발음이 같다. 현재 일본에서 판매되는 사케 이름 가운데 정종이란 이름이 들어간 제품은 150종에 이른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정종을 고급술로 생각하며 많이 소비했다. 그 문화가 이어져 고급 청주의 대명사가 정종이 됐다. 일본 역사에서 정종은 일본도(日本刀)를 만든 유명한 장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한국 청주도 대부분 일본 사케 방식으로 만들었다. 일본 사케보다 더 맛있는 한국 청주도 있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따라잡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근본이 일본이기에 전통주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국 전통 방식으로 청주를 만들어도 주세법상 청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식 주세법이 그대로 있다 보니 한국의 전통 청주를 청주라고 부르지 못하게 됐다.
명욱 <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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