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열심히 일해도 노년이 불안한 시대

입력 2021-09-16 18:10   수정 2021-09-17 01:54

심리학 용어 가운데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기대와 응원 또는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믿음이 실제로 그런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불리는 자기충족적 예언은 긍정심리학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는 집단으로 실현됐다. “언젠가는 더 좋아질 거야!”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는 실제로 많은 것을 성취해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들에게도 그런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최근 독일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책이 있다. 1979년생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율리아 프리드리히가 쓴 《노동계급》이다.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 독일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45세 이하 노동인구가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고발한다. 현재 세대가 처한 비참하면서도 암울한 노동 현실도 폭로한다.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경제학자·정치인·심리학자·과학자 등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 10년간 독일 경제는 성장했는데 정작 그 나라에 사는 대다수 사람은 어쩌다가 자본도 없고 희망도 없는 불안한 현실 가운데 살게 됐는지, 사회적 격변으로 인해 처참해진 노동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1990년에 급격하게 떨어진 임금은 다시 오르지 않았고, 상당수 직업은 점점 더 아웃소싱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이민자에게 노동시장은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 정치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자산이나 상속에 대한 세금보다 노동과 소비에 대한 세금을 더욱 가혹하게 부과함으로써 노동자 계층의 의욕을 떨어뜨렸다.” 책은 경제 성장을 위해 가장 큰 노력과 헌신을 했음에도 스스로 진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그들의 좌절감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고, 이로 인한 심각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우리에게는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라는 책의 부제에는 현재 세대의 절박함이 드러나 있다. 베를린에서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사람은 시간당 10.56유로(약 1만4500원)를 받는다. 음악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사람은 110명의 학생을 가르치는데, 수업이 있을 때만 돈을 받는다. 한 달 수입은 3000유로(약 441만원)로 적지 않은 돈이지만 4인 가족을 겨우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는 불가능하다.


비참한 현실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젊은 세대 스스로 “언젠가는 더 나빠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 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더는 불가능한 것이 돼버렸다. 발에 땀이 나도록 일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고, 겨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 그것에 만족해 살고 있다.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노년에 대한 불안에 잠 못 이루고 있다. 독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이 책은 독일 대표 경제 일간지 한델스블라트가 선정하는 2021년 ‘올해의 경제도서’ 유력 후보로 올라 있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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