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명 늘려주는 '장수 유전자' 찾았다

입력 2021-09-17 16:05   수정 2021-09-29 18:42

섭씨 100도에서도 사는 생물이 있다. 바로 고세균(사진)이다. 고세균은 온천이나 열수 분출구에서 서식하는 단세포 생물이다. 열과 염분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많은 과학자가 고세균의 유전자를 분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오랜 노력 끝에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UCL) 런던 연구진이 고세균의 유전자에서 장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변이를 찾았다. 지난 14일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열을 잘 버티는 호열성 고세균의 리보솜 일부에서 특정 아미노산이 바뀌어 있었다.

리보솜은 유전자를 단백질로 변환해주는 일종의 ‘번역기’ 역할을 하는 세포 내 소기관이다. 리보솜에 문제가 생기면 3차원 구조의 단백질이 잘못 접히거나 다른 단백질에 엉겨 붙어 문제를 일으킨다. 학계 일각에서는 리보솜의 ‘번역 실수’를 줄이면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지만 연구로 증명된 것은 없었다.

연구진은 호열성 고세균의 리보솜을 구성하는 단백질인 ‘RPS23’에 집중했다. RPS23의 특정 부위에서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이 아르기닌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구를 주도한 이바나 베도 UCL 교수는 “호열성 고세균에서만 발견되는 것을 보면, 뜨거운 환경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연구진은 다른 생물에서도 RPS23의 변이가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초파리, 효모, 예쁜꼬마선충 등에 동일한 RPS23 변이를 도입했다. 그 결과 이들의 수명이 9~23%까지 증가했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이가 일어난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더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변이 초파리는 정상 초파리보다 벽을 더 잘 기어 올라갔고, 예쁜꼬마선충의 경우 변이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낳았다.

이번 연구에 대해 저명한 분자생물학자인 바딤 글라디셰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하나의 돌연변이가 질병 등을 일으키는 사례는 많지만, 질병을 개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연구는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약물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 ‘번역의 정확도’와 ‘수명 연장’의 연관성을 밝히지 못해 약물로 개발되지 못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 오류를 줄여준다고 알려진 항생제 라파마이신이 수명 연장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지난 10년간 여럿 발표됐다. 하지만 이 둘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고, 잠재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장수약’으로서의 개발 가능성은 매우 작았다.

베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과학자들에게 번역의 정확성에 영향을 미치는 화합물을 탐색해봐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추가 연구를 통해 다른 생물에게 숨겨진 장수의 원인을 탐색할 계획이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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