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선 야권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文 “종전선언 이뤄내야 완전한 평화”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서는 “‘지구공동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미 고령인 이산가족들의 염원을 헤아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빨리 추진돼야 한다”며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같은 지역 플랫폼에서 남북한이 함께할 때 감염병과 자연재해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방역 협력체에 北 동참 촉구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내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선 비핵화-후 종전선언’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 합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에서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라고 규정하는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올해에는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그러나 이번 종전선언 제안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7개월여 남긴 데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남북 관계가 경색됐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종전선언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을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한다”며 북한에 핵무기 개발 포기를 촉구했다. 종전선언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에 북한이 동참할 것을 촉구한 것도 성사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는 지난해 말 한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 몽골이 참여해 출범했다. 그러나 북한은 동참 제안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野 “지금까지 했던 거나 잘 마무리”
야권에선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4박6일 일정의 미국 출국길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임기 말에 새로운 제안을 하기보다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재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대미 외교는 냉탕과 온탕을 거치면서 항상 혼란을 겪었다”며 “저희는 수권정당으로서 새로운 지향성을 미국 고위 관계자와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문 대통령이 북한의 최근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미사일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이 ‘종전선언’을 제안했다”며 “북한이 쏘는 미사일을 종전선언의 축포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한 데 대해서도 “별도의 의견이 없다”고 밝혔다.
임도원/이동훈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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