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개인사업자' 의심 대출, 3년새 3배 늘었다

입력 2021-09-23 14:41   수정 2021-09-23 15:22


소규모 온라인 쇼핑몰이나 오픈마켓 입점 판매자 같은 영세 전자상거래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낸 대출이 최근 3년 새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된 점을 감안해도 급격한 증가세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억세지는 대출 규제의 또 다른 단면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금융 지원은 확대되면서 문턱이 낮아진 개인사업자 대출로 급전을 충당하려는 청년·저소득층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업(통신판매업)은 별도 사업장이 필요 없고 소액의 매출만 있어도 보증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자상거래업 대출 3년 만에 2.5배
서울 소재 대학을 휴학 중인 박모(23)씨는 올 1월 통신판매업 사업자 등록을 하고 대형 오픈마켓에 판매자로 가입했다. 지난해 말부터 급등한 비트코인에 추가로 넣을 자금을 구할 요량이었다. 집 주소로 사업장을 등록하고 개인 쇼핑몰을 차리는 데에는 보름이 채 안 걸렸다. 박씨는 서울 종로 금은방을 돌며 귀걸이와 목걸이, 반지 등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쇼핑몰에 올렸다.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금은방에서 해당 상품을 사 택배로 보내주는 방식으로 약 한 달 간 7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이 생긴 박씨는 사업자등록증과 통신판매업 신고증, 판매내역서 등을 갖고 신용보증기금에서 소상공인 대출을 신청했다. 사업자 등록 기간이 짧고 매출이 적어 불안했지만 일주일 만에 1000만원 대출 승인이 떨어졌다. 보증비율도 90%여서 신용등급이 6등급으로 낮은데도 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박씨는 이 대출금을 쇼핑몰 운영이 아닌 투자 자금으로 활용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씨처럼 ‘무늬만 전자상거래업자’로 의심되는 개인사업자 대출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자상거래업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2018년 6월 말 6780억 원에서 올 6월 말 1조7153억 원으로 3년 만에 2.5배(153%)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 속도(34%)의 5배에 이른다. 전체 개인사업자 대출은 전년 대비 증가율이 지난해와 올해가 비슷한 반면 전자상거래업은 2019년 28%, 2020년 37%, 2021년 44%로 갈수록 치솟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은 개인 또는 소규모 업체가 블로그·인스타그램 같은 SNS나 오픈마켓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직접 상품을 파는(소매·소매 중개) 산업활동을 말한다. 쿠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처럼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형 오픈마켓이 활성화되면서 진입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개인 쇼핑몰이어도 도매 영업이나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겸하는 대형 쇼핑몰은 이 분류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대출이 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데에는 박씨처럼 실제로는 제대로 된 영업을 하지 않는 ‘허수’가 적지 않을 것이란 의혹이 나온다.
코로나위기·가계대출 규제에
소상공인대출 문턱 낮아지자
"허위대출 의심되는 청년 갈수록 늘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전자상거래업에 뛰어드는 자영업자가 급증하는 추세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같은 대출 폭증세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 현장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의 지점 직원은 “오직 대출을 위해 전자상거래업으로 자가에 사업장을 내고 브로커와 연계해 서류를 급하게 만들어오는 갓 20대 된 의심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전 금융권 차원에서 코로나 소상공인 대출 취급을 독려하고 있다 보니 은행에서도 개인사업자 대출은 비교적 쉽게 나갔다”고 했다. 실제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사업자 등록 직후여도 대출액이 작으면 통과율이 높다” “매출이 15만 원인데도 대출을 받았다” “예산이 많은 연초에 신청하라”며 대출을 쉽게 받기 위한 정보와 경험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한 지역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만 내고 대출을 허위로 받으려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업자 등록으로부터 최소 3~6개월이 지났는지, 실질적인 매출이 있는지, 사업장이 집이어도 사업 관련 비품이 있는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을 확인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보증심사를 간소화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증서를 담보로 한 소상공인 대출은 은행 입장에서도 꼼꼼하게 걸러낼 유인이 없다. 사업 초기 대출은 금액이 1000~30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작은데다 신보·지역신보재단의 보증비율이 70~100%여서 부실이 나도 은행의 손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개인사업자 대출 실적을 늘리려는 일부 은행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도 코로나 소상공인 대출 건수를 지점 평가 요인으로 삼는 은행들이 있었다”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대출을 남발하고 실적 늘리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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