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내년 3~4월 착공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서야 토지 보상의 초기 단계인 지장물 조사에 들어갔다. 보상 협의가 순조롭지 못하면 사업은 기약이 없게 된다. 발 벗고 지원에 나서야 할 정부마저 칸막이 규제 행정으로 사업 발목을 잡고 있으니 갑갑할 따름이다. 반도체 연구용 화학물질 사용 승인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간 이견으로 진척이 없고, 도로 문제는 군부대와 한국도로공사, 관할 경찰서 협의가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정부가 ‘K반도체 총력전’을 내세우며 ‘초파격적 지원’을 외쳐놓고는 빈말에 그치는 실상이 이렇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약속한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기는커녕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여당이 “대한민국 미래가 반도체 전쟁에 달려 있다”며 발족한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는 법안 마련을 위해 몇 차례 회의를 한 뒤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더욱이 법안에는 기업이 절실하게 원하는 반도체학과 증설을 위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완화와 화학물질 등록기준 완화, 수도권 공장총량제 예외 인정이 빠졌다. ‘초파격적 지원’은 어디 가고 ‘반쪽 법안’에 그친 것이다. 그나마 이 법안 주도권을 놓고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세계 반도체산업은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 하는, 사활을 건 전쟁 중이다. 미국, 중국, 대만뿐 아니라 유럽까지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과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국가 지원을 ‘뒷배’ 삼아 경쟁적으로 생산시설 확충에 나서면서 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는 기로에 서 있다. 정부가 특별법 등을 내놓은 것도 반도체 패권전쟁의 위기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파격적 지원’이라고 해놓고 생색내기나 면피에 그쳐선 안 된다. 공장 착공하는 데 2년 반, 송전선 설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5년이 걸리는 나라에서 반도체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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