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 같은 미국 주식, 테이퍼링 발표에 치솟은 이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입력 2021-09-24 07:18   수정 2021-09-24 07:21



23일(현지시간)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완연한 위험 선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증시에서는 다우 지수가 1.48% 올랐고 S&P 500은 1.21%, 나스닥은 1.04% 상승했습니다. 다우는 한때 621포인트, 거의 2% 근처까지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20일 이후 두 달 만에 가장 많이 오른 날이었습니다. 다우는 이번 주 초반 하락 폭을 모두 만회하고 주간 단위로 플러스로 돌아섰습니다.



장 초반부터 주요지수는 0.5~1.1% 상승세로 출발해 시간이 갈수록 오름폭이 커졌습니다. 또 금융 에너지 등 경기민감주들이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빅테크 등 기술주도 올랐지만 상승 폭은 뒤떨어졌습니다.

또 채권시장에서는 국채 10년물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안전자산인 채권 가격이 대폭 내린 겁니다. 전날엔 단기물 금리만 오르고, 장기물은 내리면서 수익률 곡선이 평평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장기물 금리가 급등해 수익률 곡선은 가팔라졌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의 테이퍼링 발표에도 경기 회복세가 지속할 것이란 믿음,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채권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 또 2022년 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반영해 이날 실질금리도 상당폭 상승했습니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도 내림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전날 잠시 올랐던 ICE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38% 하락한 93.1까지 떨어졌습니다. FOMC 이전 수준(93.2)보다 조금 더 낮아졌습니다.

사실 아침에 나온 경제 지표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전주(∼18일) 신규 실업급여 청구건수는 이전 주보다 1만 건 늘어난 35만100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2주 연속 증가세를 보이면서 시장 예상치 32만 건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다만 캘리포니아주에서 행정적으로 밀려있던 실업수당 청구가 지난주 처리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선 지난주 2만4000여 건의 신규 청구가 있었습니다.



또 미국의 9월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도 전달보다 약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0.5로 전월 확정치인 61.1에서 하락했습니다. 서비스업 PMI도 54.4로 전월 확정치인 55.1보다 떨어졌습니다.

IHS마킷의 크리스 윌리엄슨 이코노미스트는 "공급망 혼란이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급등하고 더 높은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된 또 다른 한 달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콘퍼런스보드가 집계한 8월 경기선행지수는 다행히 전월보다 0.9% 상승한 117.1을 기록했습니다.

전날 미 중앙은행(Fed)은 테이퍼링을 11월에 발표해 내년 중반에 끝내고, 기준금리 인상 전망도 앞당기는 등 예상보다 매파적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경제 지표도 별로였지만 주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테이퍼링해도 문제없다

월가 관계자는 “그동안 Fed가 테이퍼링 관련 지나칠 정도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시장에서는 테이퍼링 피로까지 있었다. 어제 좀 매파적이었지만, 11월 혹은 12월에 시작돼 내년에 끝난다는 건 그동안 시장에 알려왔던 내용이고, 시장도 예상했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는 이미 시장 가격이 반영돼 있으며, 더 부정적으로 발표됐을 때의 놀랄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제 끝났다’ 뭐 이런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월가 관계자는 "테이퍼링이 하반기 시장의 가장 큰 위험요인이었는데, 어제 Fed가 발표한 뒤 시장은 멀쩡했다"라면서 "이제 테이퍼링 위협은 우리 뒤로 지나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파월 의장이 말하듯 테이퍼링은 긴축이 아닙니다. 자산매입축소가 끝날 때까지 채권매입, 즉 유동성 공급은 계속됩니다.

블랙록의 릭 라이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고객 메모에서 "그동안 테이퍼링의 잠재적 시장 충격에 대해 걱정하고 긴장하는 일부 시장 참여자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Fed의 자산매입의 축소는 지금 단계에서 시장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라이더 CIO는 "이는 부분적으로 Fed가 테이퍼링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을 때 제대로 시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요즘 채권시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안정된 이자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고려한다면 Fed의 자산매입 축소가 별 게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라이더는 "사실 실질 수익률은 사상 최저수준이지만 금융자산의 공급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어 소득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9월만 봐도 6250억 달러기 미 국채와 회사채, 주식 시장으로 새롭게 유입됐다. 이건 그동안의 평균보다 상당히 많은 돈"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Fed의 역환매조건부채권 시장에는 또다시 1조3000억 달러가 넘는 돈이 몰렸습니다. 돈이 넘치다 보니 이자가 0.05%에 불과한 역레포 창구에도 이렇게 많은 돈이 매일 몰리고 있는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정말 시장에는 너무 많은 돈이 넘친다"라면서 "이렇게 유동성이 많다 보니 조정폭이 5%도 되기 전에 저가매수가 계속 들어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사모펀드 시장에서도 이미 기관들이 돈을 출자하겠다고 확약한 ‘드라이 파우더’가 넘치는데, 사모펀드들이 투자 대상을 찾지못해 공중에 떠 있는 돈이 수백~수천억 달러에 달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돈이 워낙 많다 보니 투자자들이 추가로 주식을 사지 않는다 해도 쉽게 팔지 않는다. 주식을 팔아서 할 게 없다. 그래서 주식이 '서울 강남의 집값'같이 되어버렸다. 괜히 먼저 판 사람만 후회하고 손해를 보는 식이다. 그래서 주식 밸류에이션은 정말 비싸지만 다들 팔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② 테이퍼링해도 경기 회복 지속

블룸버그는 "시장에 Fed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쌓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경제 및 기업 이익 회복세가 Fed의 자산 구매 감소를 능가할 만큼 충분히 강할 것으로 예상하며, 중국 헝다 사태로 인한 감염 우려에도 여전히 낮은 금리가 계속 위험자산을 지원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 Fed는 전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7.0%에서 5.9%로 낮췄지만, 내년 전망치는 3.3%에서 3.8%로, 2023년은 2.4%에서 2.5%로 높였습니다. 이는 강력한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Fed는 가계안정보고서에서 지난 6월 말로 미국 가계의 자산이 141조700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1분기보다 5조8500억 달러나 늘어났고, 펜데믹이 이어지던 지난해 2분기부터 이번 2분기까지 모두 15개월간 31조3000억 달러가 급증했습니다. 경제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미국 연방정부가 재정부양책으로 막대한 이전 소득을 나눠줬고, Fed의 역사적 완화정책 속에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덕분입니다. 실제 이번 분기 증가한 5조8500억 달러 가운데 78%(3조5000억 달러)가 금융자산 상승에서 왔고 20%(1조2000억 달러)는 부동산 자산 상승에서 비롯됐습니다.



가계 자산 141조7000억 달러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주식(47조 달러)과 부동산(34조9000억 달러)이 57.7%를 차지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시장은 Fed가 미 증시가 폭락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며 "증시가 폭락하면 미국 가계의 자산이 급감하고 이는 소비 절벽과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③ "금리 올려봐야 얼마나 올리겠어?"

월가 관계자는 "어제 발표된 점도표를 보면 Fed가 2024년까지 여섯 번이나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장은 우선 1년 이상 먼 예상은 반영하지 않는다. 그 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월가 관계자도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볼 때 기준금리를 1.75%까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며 "많이 올려야 서너 번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랙록의 라이더 CIO는 최근 야후파이낸스 인터뷰에서 채권 금리가 낮게 유지되고 있는 데 대해 "지난 35년간 일을 해왔지만, 지금처럼 고정소득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Fed가 유동성을 과도하게 늘린 점도 있지만, 채권 수요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라면서 "세계는 인구통계학적 변화(노령화)를 겪고 있으며 고정소득에 대한 필요성이 있다. 이런 수요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라이더는 주가가 기록적 수준에 있더라도 미 국채와 비교하면 과대평가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연간 20~30%씩 성장하는 기업들을 보면 내재가치가 매년 급등하는 주식들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0년물 국채는 1%대 수익률을 주고 있으며, 실질 이자율은 마이너스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주식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워터의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도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Fed는 약간의 금리 인상만 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식 등 자산가격에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Fed가 자산매입을 축소할 것이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또다시 새로운 양적완화(QE)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Fed는 침체가 닥치면 이전보다 더 낮은 금리와 더 큰 규모의 양적완화라는 역사적 선례를 만들어왔고, 또 다른 위기는 언제라도 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위기가 끝난 뒤 금리를 올린다 해도 항상 그 전 정점보다 낮은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금리는 낮아진다는 얘기입니다.

④ "헝다 위기, 영향 없을 것"

중국 헝다 사태는 중국 정부의 개입 속에 풀려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날 홍콩 증시는 1% 이상 올랐고, 헝다그룹의 주가도 17% 이상 상승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당국이 헝다그룹에 건설 중인 주택을 완공하고, 개인투자자에게 자금을 상환하고, 단기적으로 달러 채권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피할 것 등의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당국이 지방정부에 헝다의 파산 위기에 대비하고 후속 조처를 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헝다그룹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산하는 경우에 개입하라(국유화)고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헝다그룹은 위안화 채권 이자 지급에 합의했고, 달러화 표시 채권은 30일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월가에서는 헝다가 파산을 피하거나, 혹은 파산을 한다 해도 정부 개입하에 '질서 있는 파산'이 이뤄지면 금융위기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날 파월 의장은 "미국의 관련 노출이 많지 않다. 중국에 국한된 상황인 것 같다"라며 파산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⑤ 부채한도 위기는 큰 영향 없었다?

부채한도 상향 이슈는 좀 심각합니다. 임시든 정규든 간에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10월1일까지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30일까지 임시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셧다운(부문 업무정지)에 대비할 것을 준비하라고 연방 기관에 전달했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하원은 지난 21일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를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0월부터 연방정부 셧다운, 그리고 10월 어느 시점부터 채무 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치에 정통한 김동석 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공화당은 민주당과 함께 만든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초당적 인프라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다면, 상원에서도 임시 예산안과 부채한도를 담은 법안을 통과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문제는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이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사회복지 패키지)이 통과되지 않으면 초당적 인프라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3조5000억 달러 규모는 너무 크고 복잡한 데다 민주당 중도파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날 민주당 의회 지도부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재닛 옐런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백악관, 하원, 상원은 3조5000억 달러 사회복지 패키지에 돈을 댈 프레임워크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증세 방안 등 예산을 마련할 방안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다만 프레임워크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고, 중도파가 요구하는 3조5000억 달러 규모가 줄어들지 여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버니 샌더스 의원은 "프레임워크가 뭔가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연방정부 폐쇄는 주식 시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1981년부터 모두 14번의 연방정부 폐쇄가 발생했습니다. 평균 7일간 폐쇄가 지속했는데, 그 기간에 S&P500 지수는 평균 0.7%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부채한도 상향 실패로 인해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커졌던 2011년에는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S&P500 지수가 한 때 18%까지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루스홀트그룹은 "시장 난기류의 아래에서 증시 상승에 대한 지원이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 조정 압력을 완전히 피하기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강세장을 위한 또 다른 발판을 위한 기반이 형성되는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UBS자산운용의 마크 헤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Fed의 매파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호가 주식 랠리를 끝낼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헤펠은 "통화정책은 여전히 전반적으로 완화적 상태를 유지하여 국채 수익률에 대한 상승 압력을 제한할 것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에너지, 금융주와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성장에서 승자를 찾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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