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재미 제대로"…잘생기고 힘도 좋은 '재규어 F타입' [신차털기]

입력 2021-09-26 13:30   수정 2021-09-26 13:31



운전의 재미가 줄어드는 시대다. 반자율주행 기능이 보급되면서 많은 차량들이 버튼 몇 번 누르면 스스로 차로를 유지하고 앞 차와의 거리도 재며 달린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가 있거나 앞 차가 멈춘다면 알아서 제동도 해준다. 친환경 기조에 따라 배출가스를 줄이고자 엔진 배기량도 줄어들고 있다. 지속가능한 편리함에 한 발 가까워졌지만, 어딘가 지루하다는 느낌도 있다.

재규어 F타입은 운전의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차다. 특히 시승한 뉴 F타입 R은 재규어의 정점에 있는 스포츠카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스포츠카 E타입의 우아한 디자인을 계승했고, 5000cc V8 슈퍼차저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575마력 최대 토크 71.4㎏·m의 동력 성능을 발휘한다. 잘생긴 데다 힘까지 좋다. F타입은 컨버터블이 먼저 나온 모델인 만큼 F타입 R 컨버터블을 타봤다.


올해 출시된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인 F타입 R 컨버터블의 외관에는 수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전방 상단 전체를 덮는 긴 클램쉘 보닛과 곡선이 부각된 트렁크,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에 우아한 재규어 디자인의 정통성을 담아냈다.

가로형 전조등과 후미등, 보닛의 에어벤트를 통해 날렵한 이미지도 놓치지 않았다. 듀얼 머플러와 가변식 스포일러, 전면 하단의 더욱 커진 공기흡입구도 강력한 성능을 돋보이게 했다.


실내는 2인승 좌석만 남겨뒀다. 재규어 F타입 R은 전장·전폭·전고가 4475·1923·1311mm로 작은 편이다. 국산차 중에 비교하면 현대차 엑센트와 비슷한 크기에 더 넓고 낮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축간거리도 2622mm밖에 안된다.

하지만 운전석 뒤에 백팩 정도는 놓아둘 공간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얇은 서류가방이나 외투 정도를 걸어둘 곳 외엔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다. 트렁크 공간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좁았다. 정 트렁크를 사용해야겠다면 스페어 타이어를 빼는 편이 낫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실내 인테리어에서도 엿보였다. 시트포지션 조절 버튼은 도어 측면에 배치됐고 센터페시아의 온도조절 레버는 돌리는 대신 깊게 누르면 통풍·열선시트 버튼으로 변신했다. 최고급 윈저 가죽과 새틴 마감, 모노그램 스티치 패턴 등 고급감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고 시동을 걸면 위로 솟아나는 송풍구도 매력적이었다.


주행에 나서자 예상보다 조용하면서도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카는 저속에서도 우렁찬 배기음이 나고 하체가 단단해 도로의 홈만 밟아도 덜컹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F타입 R은 데일리카로 활용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급 스포츠카 가운데 가장 정숙한 모습을 보였다. 일정하게 홈을 파놓은 과속방지 구간이나 미끄럼 방지재가 도포된 띠 구간 등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진동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는 가운데 원형 RPM 게이지와 속도계가 있고 우측엔 내비게이션, 좌측엔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ADAS) 등 다양한 기능이 자리 잡았다. 운전자 용도에 따라 재배열도 가능하다. 신차답게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해 커넥티비티 기능도 갖췄다. 업데이트도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SOTA) 방식으로 늘 최신 버전을 유지할 수 있다.


쾌적한 주행을 이어가다 페달을 깊게 밟자 재규어가 숨겨뒀던 '발톱'을 드러냈다. 3000RPM을 넘기자 배기음이 중후하면서도 강렬해졌고 반응성도 한층 민첩해졌다. 방금 전까지 패션카에 가깝게 느껴졌던 성능이 당황스러울 만큼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제로백 3.7초의 가속력을 느끼며 속도를 높일수록 F타입 R은 운전자 의도대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높은 접지력을 유지한다는 안정감을 줘 속도를 높여도 불안한 느낌이 거의 없었다.

F타입 R은 우주항공 기술에서 사용하는 리벳-본딩 방식의 고강도 초경량 알루미늄 모노코크 바디를 적용해 차체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성을 높였다. 덕분에 안정성과 민첩성, 가속력이 뛰어난 역동적 주행 경험을 제공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차체의 수직 움직임, 롤링 및 피치 움직임을 초당 500회, 스티어링 휠 위치를 초당 100회씩 모니터링하며 댐핑 강도를 조정해 제어력과 민첩성을 높이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시스템도 한 몫했다.

다시 속도를 낮추고 컨버터블의 오픈에어링을 즐겨봤다. 재규어 F타입 R 컨버터블은 50km/h 이하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12초 만에 소프트톱이 개폐된다. '안전속도 5030'이 시행되는 도심에서는 언제든 여닫을 수 있다.

다만 소프트톱을 열자 메인 디스플레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각도 탓인지 외부 빛에 화면이 하얗게 뜨면서 경로를 잘 확인할 수 없는 점은 불편했다. 고속에서는 실내로 유입되는 바람이 많아 윈드 디플렉터도 필수적이었다.


재규어 F타입 R 컨버터블의 가격은 2억127만원이다. 비싸긴 하지만 비슷한 성능의 스포츠카와 비교하면 합리적인 편이다. 재규어 특유의 준수한 외모에 더해 배기량을 낮추고 전자제어장치의 개입을 늘린 최근 스포츠카들에 비하면 본연의 재미를 안겨준다는 매력도 있다. 슈퍼차저의 즉각적 반응성과 배기음이 주는 운전의 재미는 다른 차량들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다.

F타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고질적인 재규어의 애프터서비스(AS) 문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수리 기간이 오래 걸려 국내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지난해 부임한 로빈 콜건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대표는 올 초 간담회에서 "그동안 서비스가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제대로 하지 못한 많은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향후 AS 개선을 기대해볼 여지는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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