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꽉 막힌 자영업자…불법사채 내몰린다

입력 2021-09-24 17:35   수정 2021-10-06 19:02

경기 성남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윤모씨(55)는 지난달 불법 사채로 200만원을 빌렸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2분기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대출이 잘 나왔다. 그는 대출금으로 밀린 임차료와 인건비를 충당하면서 가까스로 식당 운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1년7개월째 이어지면서 원금 상환은 꿈도 못 꾸고 추가 대출까지 받게 됐다. 신용등급도 급락했다. 윤씨는 “‘두 달 뒤 반드시 원금을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2금융권에서 대출 승인이 거부됐다”며 “밀린 직원 월급이라도 주기 위해 불법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불법사채 시장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영업난을 이기지 못해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대고 있다. 인건비와 임차료 등을 대출금으로 돌려막다 신용등급이 낮아져 제도권 대출이 막힌 이들이 대부분이다.

자영업자들이 불법 사채에 손을 대는 건 이미 은행 등 제도권 금융사에서 받은 대출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영업시간과 방문 인원을 통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대면영업 중심의 자영업자들을 한계로 내몰았다.

이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 초부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임차료와 인건비 등을 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1년7개월째 이어지면서 매출이 회복되지 않자 원금 상환에 문제가 생겼다. “원금이 상당액 남아 있다 보니 제도권 금융사에서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많은 자영업자의 설명이다.

이자 상환을 제때 못해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도 제도권 대출이 막힌 요인이다. 결국 ‘코로나에 따른 매출 감소→대출 실행→원금 및 이자 미상환→추가 대출→불법 사채 이용’이란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한도를 꽉 채워 은행 대출을 받은 데 이어 ‘카드론’까지 이용했다가 신용카드가 모두 정지돼 이달 초 급기야 사채로 급전을 융통했다.

이창호 전국호프연합회 대표는 “대부분 자영업자가 1년 뒤 상환을 전제로 지난해 이자 부담을 안고 대출을 받았는데, 영업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아 원금 상환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 비용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탓에 폐업 결정도 섣불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800조원 돌파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쌓이는 현실은 숫자로도 잘 드러난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자영업자 대출액은 858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3.7% 늘었다. 전체 가계부채 1800조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자영업자 대출이다. 2016년만 해도 자영업자 대출은 520조원대에 머물렀다.

대출의 질도 더 부실해졌다. 2금융권에서 받은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 저축은행·신용카드·대부업 등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도 18% 늘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통상 경기가 나빠질 때 불법 사채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며 “올해 1~8월 불법 사채 피해 신고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지금보다 더 불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올라갈 경우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2조9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한은은 추정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들의 영업난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부채만 늘다 보니 가계부채 전체가 부실화할 우려가 크다”며 “금융당국이 대책 없이 대출만기 연장 조치만 취할 게 아니라 채무자 상환 능력 등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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