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정책’은 실용주의에서 가장 빛났다. 중도우파인 그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전임 좌파 정권 법안도 과감히 수용했다. 고비용·비능률을 개혁하기 위해 과한 복지를 줄이고 해고 규정을 완화하도록 한 ‘하르츠 개혁’을 이어받아 국가경제를 살렸다.
안으로는 통합과 조화 위주의 ‘무티(Mutti·엄마) 리더십’으로 안정을 꾀하고, 밖으로는 EU(유럽연합)의 단합을 주도하며 ‘유럽의 여제(女帝)’ 역할까지 했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 땐 “대안은 없다”는 결연한 표현으로 유로존의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밀어붙였다.
11년간 영국을 이끈 마거릿 대처 총리도 감세와 노동개혁, 긴축을 추진하며 “대안은 없다”라는 문구를 썼다. 대처는 강성 노조의 파업을 종식시키는 등 고질적인 영국병(病)을 치유하고,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하며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대처는 정부 개입 위주의 케인스주의 대신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세금 감면, 자유무역으로 쇠락한 영국 경제를 되살렸다. 이 과정에서 G7 정상회의에 12차례 참석해 국제 공조를 다졌다. 마르켈도 15차례에 걸쳐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 각 4명, 영국 총리 5명과 만나 협력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둘 다 ‘위대한 리더’ 반열에 올랐다.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도 ‘전략적 실용주의자’였다. 전임 총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는 취임 후 거꾸로 TPP를 적극 추진했고,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교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기적 국익을 위해 핵심 지지층의 반발도 회피하지 않는 ‘결단의 리더’”로 평가받았다.
이들의 닮은점은 정치적 대립의 ‘벽’을 넘어 정책적 대안의 ‘문’을 연 리더라는 것이다. 새 총리를 뽑는 중인 독일과 일본의 선거 이슈도 ‘미래’와 ‘정책’이다. 우리만 과거에 함몰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난 역사학자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라고 한 메르켈의 명언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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