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가 치러지는 내내 지속적으로 단원들과 소통하며 안정적으로 연주를 이끌었다. 요즘 보기 드문 지휘자다.”
지난 18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열린 제57회 브장송 지휘콩쿠르 최종 라운드가 끝난 후 폴 다니엘 심사위원장은 지휘자 이든(32)을 이렇게 평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지휘 콩쿠르로 평가받는 브장송 콩쿠르는 창설 70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에는 1위(그랑프리)를 선정하지 않은 채 결승 진출자 세 명 모두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고 있는 이든은 25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랑프리는 못 탔지만 혼신의 힘을 무대에 쏟아내 후련하다”며 “특별상 수상은 앞으로 더 나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프랑스 문화부가 2년마다 개최하는 이 콩쿠르의 결승 무대에 오를 세 명에 한국인 지휘자가 뽑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52년 창설된 뒤로 세이지 오자와(1959년), 요엘 레비(1978년) 등을 우승자로 배출했다. 수많은 한국인 지휘자도 우승을 꿈꿨다. 홍석원(2009년) 지중배(2011년) 등이 20명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했지만 우승을 다투는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든은 지휘자가 된 지 5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2016년부터 지휘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전까지는 피아니스트 겸 성악가였다. 중학생 때 밀라노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베르디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했다. 밀라노 푸치니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고, 테너로서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성악과 전문연주자 과정을 밟으려고 떠난 미국 매네스음악원에서 진로를 바꿨다. “관심만 두고 있었는데 뉴욕에 있는 소규모 유스오케스트라가 저에게 지휘봉을 맡겼어요. 지휘석에서 또 다른 희열을 느꼈죠. 그 뒤로 지휘와 성악, 피아노를 모두 써먹으려면 ‘오페라 지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휘에 앞서 배운 피아노와 성악 덕분에 성장 속도가 빨랐다. 그는 2019년 밀라노베르디국립음악원에서 지휘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각종 지휘 콩쿠르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해 루이치 만치넬리 오페라지휘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헝가리 다뉴브 지휘콩쿠르·루마니아 BMI국제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그는 “연습 때마다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게 큰 강점이 된 것 같다”며 “피아노를 치며 성악가를 코칭해주고, 직접 노래를 부르며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멘토였던 핀란드 지휘자 요르마 파눌라의 도움도 컸다. 시벨리우스음악원을 다니진 않았지만 지휘자들의 ‘대부’로 불리는 파눌라의 마스터클래스에서 지휘를 배웠다. 파눌라의 제자들은 전 세계 명문 악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든은 “브장송 콩쿠르 결승 전날까지 파눌라와 전화를 하며 무대 매너를 배웠다”며 “파눌라는 늘 ‘단원들 위에서 군림하지 말고 끝없이 대화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30대 지휘자인 그에게 남은 과제는 오페라를 섭렵하는 일이다. 올해는 밀라노에서 열리는 ‘벨 오페라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오페라의 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인정받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며 “현존하는 모든 오페라를 다룰 때까지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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