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가 제기한 문제점을 시행령에 반영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경영책임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등이 다소 구체화되긴 했다. 하지만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정, ‘직업성 질병의 범위나 중증’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명시되지 않아 결함으로 남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문제를 제기하는 게 공감된다. 특히 “전문가도 파악하기 어려운 사업주의 의무를 기업이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중기중앙회 입장문을 보면 중소기업들의 두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입법 초기부터 시종일관 관련 당사자의 우려와 불만, 비판과 반대가 많았던 법도 흔치 않을 것이다. 산업안전을 강화하고 사업장 사고를 막자는 취지야 누가 부인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채 처벌 일변도로는 문제해결이 어려운 게 인간 사회다. 더구나 모법(母法)에 이어 시행령에도 해석과 평가가 필요한 대목을 잔뜩 남겨뒀으니, 단속·조사에 나서는 현장 공무원들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판단에 기업 생사가 좌우될 수도 있는 판이다. 심지어 경찰까지 수사권을 갖겠다고 나선 마당이다. 지방고용청과 경찰이 단속경쟁이라도 벌이면 이 법이야말로 기업에 ‘최대 중대재해’가 될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한국형 징벌 규제’의 새로운 상징처럼 부각돼 해외에서도 관심거리가 됐고, 조롱까지 받았다. 근래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급작스런 퇴진 때 주한 외국기업인들 사이에 ‘오잉크(OINK: Only IN Korea) 리스크’라는 은어가 나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다국적기업 CEO들 사이에선 한국이 기피 1순위’라는 포럼에서의 공개발표까지 있었다.
법안 재개정이 어렵다면 1~2년 정도 시행이라도 늦추고 세밀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 정리가 덜 된 쟁점들은 부령(部令)인 시행규칙이나 고용부 지방청 창구에 배치될 ‘가이드북’에라도 명문화해야 한다. 이 법의 주된 대상인 기업이 걱정하고 보완을 요구하는데 그대로 시행한다면 과연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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