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빅블러 시대'와 불편한 세상

입력 2021-09-29 17:22   수정 2021-09-30 00:14

최근 e커머스가 발달해 퀵커머스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 ‘B마트’로 생필품을 주문하면 15~30분 후 집으로 배달이 실제 이뤄진다. 소비자는 역사상 최고 수준의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됐다. 이처럼 편리한 소비 생활만큼 우리 마음도 편안해지고 있을까? 재택 근무도, 15분 배송 서비스도 가능해진 놀라운 세상이다.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에 진실은 모호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마음은 불편한 세상으로 변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불편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첫째,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과잉으로 콘텐츠와 정보의 양은 사람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TMI란 ‘너무 과한 정보(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이다. 의도치 않게 달갑지 않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게 돼 불쾌감을 느끼는 상황을 표시하는 용어로, 영미권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하루에 업로드되는 유튜브 동영상은 한 사람이 24시간 시청하는 경우 83년 정도 되는 분량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단 하루 생산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평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앱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중독돼 하루 3~4시간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이 같은 인터넷 중독으로 휴식이나 자기 업무와 학습에 집중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해진다. 이 같은 ‘시간부족(time poverty)’ 현상은 우리 사회를 ‘피로사회’로 만들었고, 현대인을 하루 종일 마음이 초조한 ‘시간 거지’로 만들고 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삶에서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블러’란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말한다. 세상이 초연결되고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이 융합되면서 과거 명확했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사람과 기계, 제조와 서비스, 생산자와 소비자,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 천재를 이기고 가상 인간이 일류 연예인의 광고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기술의 변화 속도 앞에서 인간은 왜소해지고 미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이 퍼지고 있다.

게다가 기상이변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가속화하면서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불안감을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다. 빅 블러 현상으로 과거의 상식이 파괴되는 ‘위험 사회’로 세상이 진화하고 있다. 위험사회에 살아야 하는 우리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셋째,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과 ‘불편한 사실(inconvenient facts)’이 대립하면서 우리에게 큰 혼동을 주고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기상이변으로 심각한 환경위기를 15년 전 책과 영화로 세계에 알렸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운동에도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기후 위기론과 회의론을 두고 불편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은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공식적인 가설이다.

한편 그레고리 라이트스톤 미국 이산화탄소연맹 회장 등 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불편한 사실’에서는 지구온도 상승은 수만 년 동안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기후 사이클의 결과이며 온실효과는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지구촌에 다양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보온담요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과학자들의 ‘뇌피셜’이라고 하기에는 수많은 과학 논문이 이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10년 후 미래를 봐야 더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있기에 지구인들의 마음은 현재 불편하기 그지없다.

불편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생 성공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소득’과 ‘성장’에서 ‘행복’과 ‘균형’이 새 성공 지표가 돼야 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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