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 FC는 축구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기 위해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의 딥마인드(DeepMind)와 함께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리버풀은 딥마인드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치른 모든 경기 데이터를 제공했다. 연구를 주도한 딥마인드의 AI 연구원 칼 투일스(Karl Tuyls) 박사는 축구는 여러 명의 선수가 협동, 경쟁하는 동적인 스포츠로 예측이 쉽지 않지만, 향후 5년 내에 AI가 ‘자동화된 비디오 보조 코치’(Automated Video Assistant Coach)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걸음마 뗀 축구 AI
최근 몇 년 동안 경기 중 선수의 활동량을 측정하는 EPTS(Electronic Performance & Tracking Systems) 센서와 컴퓨터 비전 기반의 대상 추적(Object tracking) 카메라 등을 통해 선수 개인의 활동 정보는 물론 경기장 내 모든 선수와 공의 움직임이 담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컴퓨팅 퍼포먼스도 증가하면서 방대한 경기 영상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는 과거 골, 어시스트 등 공격 포인트 중심이었던 선수 가치 평가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는데, 골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오프 더 볼(Off the ball) 상태의 좋은 움직임으로 팀 승리에 기여한 선수의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신체활동 데이터를 활용, 선수의 체력과 부상 리스크를 과학적으로 관리하여 선수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AI는 전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축구에서 xG(Expected Goals)라는 지표는 어떤 상황에서 슈팅이 골로 이어질 확률이다. 슈팅한 선수가 골대에서 떨어진 위치와 각도, 어시스트 종류, 킥/헤딩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관여한다. 과거에도 xG와 유사한 개념이 있었지만, xG가 축구계에서 의미 있는 지표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 사람이 일일이 모니터링하던 것을 AI가 대체하면서 지표의 정확도와 신뢰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술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팀 전체의 xG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AI가 경기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여 코치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수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현재는 훈련 역시 세트피스나 특정 플레이 상황을 가정한 단편적인 전술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딥마인드의 연구만 보더라도 가장 데이터 집약적(Data-Intensive)인 분석은 페널티킥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공을 찰 확률이 가장 높은 방향을 포지션별로 예측한 부분이었다.
경기장 안팎 상황 반영한 표준 데이터 수집 필요
AI가 단편적 수준의 적용을 넘어 경기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똑똑한 보조 코치로 거듭나려면 22명 선수의 움직임 분석뿐 아니라, 경기장 안팎의 상황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축구는 바둑과 달리 선수 개인 역량에 차이가 있고, 경기장의 상태, 기상 상황, 팀이 직면한 상황(승패에 따른 팀의 승격 또는 강등 여부 등) 등 여러 경기 외적인 요소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기장 안팎의 상황에 대한 표준화된 데이터 수집과 함께 인공신경망 등의 기계학습 적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수의 증가에 따라 기계학습을 통한 솔루션 도출을 위해 알파고가 학습한 바둑의 기보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경기 데이터가 요구된다. 알파고가 2016년 이세돌 9단과 대국할 당시 16만 개의 기보에서 총 3000만 개 이상의 착점을 학습했고, 바둑판이 불과 361개의 착점으로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축구 경기장 안팎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 얼마나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한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매우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와 학습방법이 요구된다.
AI가 그리는 원대한 미래, 디지털 트윈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FC의 모기업 시티풋볼그룹(CFG)의 데이터과학자 브라이언 프레스티지(Brian Prestidge)는 이상적인 AI 훈련 환경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전술을 테스트하는 것이며, 전술 테스트라는 개념은 모든 상대 선수를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 구현한 후 궁극적으로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알파고가 무수히 많은 수에 대한 시뮬레이션 후에 가장 승리 가능성이 높은 수를 두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렇게 가상으로 구현된 공간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축구계에서 그리는 AI의 이상향은 실제 경기 상황과 유사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여 상대팀과의 플레이를 시뮬레이션하고, 그 중 가장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선수 개개인은 고유한 성격을 가진 인격체
바둑과 축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둑알과 달리 선수 하나하나가 고유한 성격을 가진 인격체라는 점이다. 22명의 선수가 모두 동일한 운동능력을 가졌다 해도 바둑처럼 완벽하게 컨트롤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수 모두가 다른 태도와 정신으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통한 예측과 실제 경기 내용이 일치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러한 멘탈적인 요소는 선수의 축구지능(감독의 지시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로 경기에 임하는지, 경기장에서 동료나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전술적으로 이해하는지 등), 팀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 상대팀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등 다양하다. 현 수준의 데이터에서는 이러한 멘탈적인 요소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성공적인 디지털 트윈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 맥락을 넘어 선수의 멘탈까지 이해하는 AI 기대
선수의 멘탈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는 문제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앞으로는 EPTS, 컴퓨터 비전 기반의 대상 추적을 통해 수집되는 경기 데이터만큼 선수의 멘탈적인 요소로 간주될 수 있는 데이터의 중요도도 높아질 것이다. 경기장 안팎의 상황(맥락)과 선수의 운동능력(움직임), 선수의 멘탈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축구계의 디지털 트윈이 구현될 미래를 기대해본다.
황설욱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