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시름하는 美 양돈업계…베이컨값도 급등

입력 2021-09-30 16:48   수정 2021-09-30 16:49



미국에서 베이컨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미국 내 가축 가공 공장이 문을 닫은 영향으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아프리카 돼지열병까지 확산하면서 수입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독과점 규제카드를 꺼내는 등 대응에 나섰다.

30일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의 베이컨 평균 가격은 최근 1년 간 28% 급등했다. 돼지고기 가격이 7% 오른 것과 비교하면 인상폭이 가파르다. 미국 요식업계는 올해 가격상승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미구엘 데스코베도씨는 케밥을 위해 매일 구매해야 하는 30파운드 돼지고기 가격이 몇달 새 두 배로 상승했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음식점 사업을 해왔지만 올해 같은 급격한 가격상승은 처음"이라며 "올해 예산을 책정할 때 가격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가격 상승의 원인은 코로나19다. 미국에선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돼지고기 공급망이 완전히 무너졌다. 코로나19가 막 확산하던 지난해 미국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슈퍼마켓 육류 코너가 텅 비었다. 이를 채워넣어야 했지만 육류를 포장하는 공장들은 코로나19 확산 통로가 됐다.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하는 업무 특성 탓에 이들 공장은 집단감염 진앙지가 됐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육류 가공공장이 문을 닫자 농장에 있는 돼지가 제때 출하되지 못했다. 적정 사육기간을 넘긴 돼지가 늘면서 미 돼지 사육 농장들은 수백만 마리의 돼지를 안락사시켰다. 어렵게 키운 돼지를 버려야 했던 농가들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판단했다. 돼지농가들은 돼지번식을 억제하면서 생산량 조절에 나섰다. 그 결과 올해 돼지고기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농장들의 예상과 달리 수요는 급증했다. 미국이 코로나19 위험에서 벗어나자 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단백질 열풍이 불면서 돼지고기 수요는 급증했다.

지난해 말부터 유통업체들은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메우기 위해 돼지고기를 찾아 나섰다. 도축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돼지고기까지 슈퍼마켓 등에 진열됐다. 재고가 바닥나자 가격이 급등했다. 사료 물류비 임금 등이 오른 것도 돼지고기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줬다.

아담 스펙 IHS마켓 이코노미스트는 "최고 수준으로 오른 선물 지표를 볼 때 내년 6월은 돼야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이컨은 다르다. 돼지고기를 다시 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보다 가격이 더 느리게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유행하는 것도 돼지고기 수급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확산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올해 7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확인됐다. 서반구 지역에서 이 바이러스가 확인된 것은 40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 양돈농가들은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베트남 등에서 부족한 돼지를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입 돼지 때문에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미국까지 확산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육류 시장의 독과점 구조도 돼지고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육류기업 가격 담합을 막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 이유다.

미국에선 4개 육류 기업이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시장의 66%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1976년보다 두배 늘었다. 미국에서 지난해 12월 이후 돼지고기 가격은 12.1%, 소고기는 14%, 닭고기는 6.6% 상승했다. 다른 식품보다 가파른 물가 상승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상황이 독점 금지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달초 독과점을 풀기 위해 소규모 가축 농가 등에 14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장 경쟁자를 늘리기 위해 새로 진입하는 업체에 5억달러도 투자할 방침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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