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개혁에 대한 공약도 찾기 힘들다. 정치가 전례 없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그렇다. 실제로는 국회의 행정부 견제 상실과 ‘사법부의 독립성’ 의심으로 삼권분립이 붕괴된 모습이다. 여당은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며 원 구성에서 법안 통과까지 국회에서 ‘타협 없는 독주’를 이어가고 있고, 180석 ‘슈퍼여당’이 행정부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면서 국회의 견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 임명을 강행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조차 우려되는 수준이다.
청와대는 미국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가 1972년 닉슨 행정부의 막강한 권력을 묘사하면서 사용했던 개념인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황제급 대통령’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가진 ‘비상대권’도 갖지 못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황제급 대통령’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고, 팬덤 정치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권이 더해져 무소불위의 ‘청와대 정부’가 됐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해결로 정치권이 과거부터 제시한 방안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이다. 가깝게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를 위해 ‘국회에서 추천하고 선출한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는’ 방식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대한민국 금기깨기》에서 제안했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 또한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고, 현행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에게 분산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로 불리는 이원정부제가 오히려 초(超)대통령제 내지는 헌정 위기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튀니지에서 발생한 헌정 위기가 바로 그렇다. 튀니지의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히셈 메시시 총리를 해임하고 내무·법무·국방장관 등을 경질했으며,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가 비상사태를 언급하며 행정권을 쥐었다.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 민주화 물결을 일으킨 나라인데 경제 부진과 코로나 위기로 이원정부제의 단점인 대통령과 의회 간 갈등이 드러난 것이다.
국회가 총리를 뽑는다고 개혁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권이 있다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총리 임명을 거부하거나 아예 의회 해산에 나서는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제2공화국 시절 민주당 구파의 윤보선 대통령은 다수인 신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했지만 국회 투표에서 부결됐고 이후 신파의 장면이 총리로 선출된 경험이 있다. 또 바이마르공화국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사민당 출신인 뮐러 총리를 해임하며 정치적 혼란을 초래했고 결국 히틀러의 나치당에 권력 장악의 길을 열어줬다.
국회 선출 총리 주장은 대통령과 총리가 순순히 권력을 나누고 듀엣을 이뤄 국정을 원활히 수행할 것을 가정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프랑스 사례로 볼 때 꼭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의 분권도 현실에서는 역할 분쟁 소지만 높고 시대착오적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따라 국회가 총리를 선출한다고 해도 대통령의 지지로 뽑힐 경우 꼭두각시 총리가 될 가능성도 높다. 역으로 국회 다수당이 대통령의 정당과 다른 여소야대 정부가 된다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뽑은 총리의 충돌을 예상해야 한다. 서로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면 정책 결정 마비로 헌정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정치권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등 정치 개혁에 신중해야 한다. 개악이 될 수 있다. 진정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를 위한다면 헌법에서 대통령의 대법원장·대법관 임명,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임명권을 무력화하고 감사원장과 공수처장 임명권을 형해화하며, 두 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해 삼권분립을 확립하는 제도 개선이 우선이다. 제도 개선에 더해 대선에서 스스로 권력 사용을 절제하는 대통령을 뽑는 일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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