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들의 운임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조치를 무력화시키는 해운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해운업계과 공정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해운법 개정안에 과거 해운사의 담합행위까지 공정개래법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기면서다. 공정위는 “해운업계의 악성 담합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해운사의 공동행위에 대한 규제 권한을 해수부가 갖고,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법안 소위원회 심사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적용례 부칙을 추가해 개정안을 소급 적용토록 했다. 과거 행위까지 포괄해 법 적용을 하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이는 해운업계 담합에 대해 제재절차를 밟고 있는 공정위를 직접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국내·외 선사 23곳이 한국-동남아시아 노선에서 담합행위를 했다는 판단에 따라 과징금 8000억원을 부과하는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이에 해운업계는 해운사 공동행위는 불법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해운법 29조1항에서 선사 간 운임·선박 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논란의 핵심은 해운법이 허용하고 있는 공동행위 범위를 넘어서는 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여부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은 운임 협의 과정에서 화주들의 반대로 가격 인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담합행위에 나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해운사들은 화주들을 배제하고, 해운사들끼리 운임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후 개별 회사차원에서 운임 인상을 각 화주에 통보했다. 공동행위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법대로 하는 게 꼭 바람직한 게 아니다. 몰래하자”는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 동의 등의 단어를 다른 암호로 대체해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가격 인상에 동의하지 않은 화주에 대해선 선적 거부로 대응했다. 일부 해운사가 상호 협의한 것보다 낮은 운임을 적용하자,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같은 담합 행위로 화주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가 전가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안을 소급 적용해 이번 담합 행위에 면죄부를 주면, 향후 발생하는 해운사들의 악성 담합에 대해서도 제재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며 “만약 해외 글로벌 선사들이 미주 노선 등에서 가격 담합에 나서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해운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특정기업의 담합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법까지 고쳐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운업계와 해수부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는 해운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공정위가 무리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겨우 반등에 성공한 해운산업이 도산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해운사 공동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해수부도 해운업계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해운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달라는 취지다. 실제로 원양선사인 HMM과 SM상선은 작년 흑자전환에 성공하기 전까지 HMM은 5년 연속, SM상선은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동남아 노선도 선복 과잉으로 운임이 하락하면서 수년 동안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선사가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공동행위를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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