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플랫폼 비즈는 기술 아닌 시장구조의 변화

입력 2021-10-04 09:00  


하드웨어 시대가 가고 소프트웨어 세상이 온 줄로만 알았다. 넷스케이프 설립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전체 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전환기를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소프트웨어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을 언급했다. 그 기업들은 애플과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트인, 구글, 아마존 등이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부상
2011년 앤드리슨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가 언급한 기업들은 그저 인터넷 기반으로 형성되고 운영되는 형태가 아니었다. 모두 플랫폼 기업이었다. 인터넷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모델을 활용해 인터넷의 잠재력을 진정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었다. 애플이 미국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에 오른 것은 2012년이었다. 당시 이미 전통적인 기업들이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넷 시대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부상했지만, 돌이켜보건대 경제 혁신을 추동한 것은 플랫폼이었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그 영향력은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졌다. 상업적 인프라가 취약했던 개발도상국에 인터넷 접속이 확대되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텐센트와 바이두가 일부 국영산업을 제외하고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4년 9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타오바오와 티몰 플랫폼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80%를 지배한다.
선형구조 vs 다방향 구조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활용했는지 여부가 아니었다.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가 핵심이다. 전통적인 사업모델은 선형적이다. 이는 증기기관이나 철도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대규모 조직을 탄생시켰던 산업혁명 시대 이후로 다양한 형태의 각 산업을 지배해온 모델이다.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고객에게 판매했다. 가치는 회사가 구축한 공급사슬을 따라 특정한 하나의 방향으로 흘렀다. 즉, 선형적이었다. 기업이 상품을 만들어 월마트나 베스트바이와 같은 유통업체에 판매하고, 유통업체가 다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as-a-service)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판매하는 제품이 비록 디지털 제품이긴 하지만, 그 구조는 선형적이다. 즉, 가치의 흐름이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고객으로 흐르는 단방향적이다.

이렇게 수직적으로 통합된 모델이 20세기 내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활동과 자원들이 구조화된 체계 속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됐고, 고객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공급사슬이 기업가치의 핵심기준이 되지 못한다. 선형적인 모델에서는 가치를 내부적으로 창조해 고객에게 파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지는 가치교환은 단방향이 아닌 다방향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기업이 어떤 자산을 소유했는지가 아닌 어떤 자산들과 연결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규모 역시 과거에는 기업이 투자하고 내부 자원을 늘린 결과였지만, 플랫폼 기업의 규모는 외부의 네트워크와 얼마나 연결되었는지로 결정된다. 21세기 초반의 닷컴 열풍이 빠르게 식은 것은 이런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고, 그저 인터넷이라는 도구에만 초점을 맞춘 탓이다.
시장구조로서의 플랫폼 모델
모든 플랫폼 모델은 그 성장 속도가 기하급수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선형적인 기업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때 단 하나의 관계, 즉 어떤 상품을 구입하는 하나의 구매자만이 추가된다. 반면 플랫폼에 신규 사용자가 들어올 경우 이 사람은 그 플랫폼의 다른 모든 사용자들과 맺을 수 있는 잠재적인 관계의 총합이 추가된다. 플랫폼 기업이 대체한 전통기업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비용효율적일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플랫폼은 기술이 아닌 하나의 시장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플랫폼 기업임을 천명하지만, 대부분 기술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PC운영체계를 컴퓨팅 플랫폼이라 표현하거나 자동차 제조처럼 일련의 제품군의 바탕이 되는 공통적인 설계 모듈을 플랫폼이라 부르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 모두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쓸 뿐 그 구조는 여전히 선형적이다. 즉, 네트워크가 아닌 제품 중심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플랫폼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선형적인 가치전달 체계에서 벗어난 하나의 시장형태임을 이해할 때 비로소 미래지향적인 건설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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