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들이 유통업계와 협업해 생활밀착형 제품을 출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라면, 우동, 맥주, 생수 등 소비자 접근이 용이한 식품군이 대다수다. 소비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Fun+Consumer) 성향이 강한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이색 마케팅 전략으로 화제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는 덤이다.
이 상품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업무 협의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탄생했다. 정태영 부회장이 본인 레시피로 만든 된장라면을 소개했는데, 정용진 부회장이 이에 호응하면서 두 회사가 본격적으로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이마트가 현대카드 레시피를 바탕으로 한 밀키트 상품 개발과 판매를 맡고, 현대카드가 패키지 디자인과 광고물 제작을 담당해 상품을 출시하게 됐다.
정태영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레시피를 공개했던 이 된장라면의 이름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제품을 맛보면 '정이 생긴다'는 사전적 의미에 정용진 부회장과 정태영 부회장의 성씨 '정'을 강조한 것. 두 사람의 두터운 친분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 지난 2월에는 같은 날 동일한 장소에서 중식 요리를 만드는 사진을 각자의 SNS에 올리면서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카드업계에서 식품을 내놓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씨카드는 지난해 결제금융 플랫폼 페이북 홍보차 GS리테일과 손잡고 '부자될라면 페이북' 컵라면을 출시한 바 있다. 당시 비씨카드는 상품 개발부터 출시까지 상품 제작 과정 전반에 직접 참여하면서 업계 이목을 끌었다. 파불닭볶음 맛으로 기획된 이 상품은 스프의 명칭을 'QR결제' '마이태그' '해외주식·금투자'로 설정해 소비자의 관심도를 높였다.
금융권에서도 회사 이름을 내걸고 생활밀착형 제품을 판매한 사례가 있다. 바로 보험업계다. 지난 5월 삼성생명은 이마트·롯데칠성과 협업해 '삼성생명수(水)'를 출시했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이라는 존재 가치와 고객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생명보험업의 본질을 부각하기 위해 제품명을 '생명수'라고 정했다.
삼성생명은 페트병 라벨을 제거해 분리 배출하자는 '착한 습관 캠페인'을 제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수 페트병 라벨 뒤쪽에 경품 추첨 이벤트 접속 QR코드를 남겨,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친환경 활동을 유도하는 방식을 꾀했다. 삼성생명은 제품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환아 의료비 지원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Z세대를 겨냥한 이색 마케팅에 집중하는 신한라이프도 식품을 내놨다. 신한라이프는 오렌지라이프 합병 이전 신한생명의 명칭을 사용했던 지난 2월 편의점 CU와 협업해 생면우동 '신한생면' 제품을 출시했다. 작명에는 언어유희적 측면이 고려됐다. 제품을 보고 바로 '신한생명'이 떠오를 수 있도록 비슷한 발음에 해당하는 '신한생면'을 명칭으로 골랐다.
당시 신한생면이 포함된 '신한생명 레디백 패키지' 3000개 한정 상품은 예약판매 개시 당일 100분 만에 완판되면서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다. 신한라이프는 올해 하반기 수제 맥주업체 맥파이와 협업한 맥주 '브라보 마이 신한라이프'를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국내 금융사가 유통업계와 손잡고 이색 마케팅에 나서는 데에는 MZ세대 고객 확보 목적이 크다.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버리고 젊은층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세운 것이다. MZ세대의 소비 성향을 드러내는 대표적 단어가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이니 만큼, 화제성을 높이는 데에도 제격이다. 금융사가 타 업종과의 협업으로 이색 마케팅에 나서는 양상이 추후 더 뚜렷해질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MZ세대가 미래 잠재 고객에서 전체 소비 시장을 이끄는 주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고객 확보를 위한 경쟁 심화가 예상돼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과 협업으로 내놓는 상품의 경우 젊은 층의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명칭과 모양 등에서 기존 제품과 차이가 있다 보니 SNS에서 회자되는 경우도 잦다"며 "카드업, 보험업에서도 MZ세대가 실질적인 주 고객층으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더욱 만연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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