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실도 '오징어 게임'일까?

입력 2021-10-03 17:14   수정 2021-10-04 00:13

요즘 핫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휴일에 몰아봤다. 드라마를 보며 극적인 재미도 느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오징어 게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남은 인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살지, 아니면 목숨을 건 게임에 뛰어들어 마지막 기회를 잡을지 ‘양자택일’을 압박받는다. 과연 현실에서도 선택지는 모 아니면 도뿐일까?

엊그제 필자가 상담한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4년 전부터 대학가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했는데, 작년부터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해 빚으로 메워 왔고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없어 상담받으러 온 것이다. 7개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금액이 총 1억5000만원이나 되는데 단 한 건도 연체가 없었다. 돌려막기를 해서라도 얼마나 악착같이 빚을 갚으려고 노력했을지 짐작이 가 안타까웠다.

다행히 코로나19 피해지원 대책을 통해 우선 6개월 동안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그 이후에는 이자 부담을 줄이고 원금을 장기 분할 상환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그분은 이자 부담도 낮아지고, 무엇보다 한 달에 일곱 번 돌아오던 대출 결제일이 한 번으로 줄어서 이제 연체할 걱정 없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고군분투해도 노력만으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예기치 못한 금전적 위기는 인생에 큰 상흔을 남기고,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다. 게임에서는 실패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 몫이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어디 개인만의 잘못인가.

치열한 경쟁의 결과가 통과 아니면 탈락 둘 중 하나인 오징어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서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도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여러 경제적 외풍을 겪으면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채무조정을 비롯해 법원의 개인회생, 파산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무자 구제제도를 갖췄고,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적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왔다. 여기에 서민금융진흥원의 햇살론이나 안전망대출과 같이 소득이 적고 신용이 낮아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서민금융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채무조정제도나 정책서민금융은 연체나 과중 채무로 고통받는 서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분야의 사회안전망인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채무자 구제제도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고 빚 문제를 키우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빚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처방을 받는 것처럼, 빚 문제로 어려워지면 바로 신용회복위원회 콜센터나 앱을 통해 전문가와 상담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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