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몽니에 '조선 빅딜' 흔들…현대중공업 '최후의 카드' 꺼내드나

입력 2021-10-03 17:30   수정 2021-10-04 09:38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이 큰 위기를 맞았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인수의 최대 관건인 기업결합 심사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심사 마지노선’인 올해 말까지 LNG 사업 일부 매각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인수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산 매각 압박하는 EU
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 인수 기한을 오는 12월 31일로 3개월 연기한다고 지난달 30일 공시했다. 이번이 네 번째 연기다. 당초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3월 8일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 본계약을 맺으면서 계약 만료일을 체결일로부터 12개월 이내로 정했다. 하지만 인수의 필수조건인 주요국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합병 필수 신고국가 여섯 곳 중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EU·일본 경쟁당국의 심사 결과가 남아 있다. 중국,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에선 결합 심사가 통과됐다.

관건은 EU다. 코로나19 여파로 심사가 중단됐다는 게 EU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EU는 작년부터 LNG선 시장 독점을 해결할 방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세계 1, 2위 조선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선 시장 점유율은 60%가 넘는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 153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 중 국내 조선 3사의 수주량은 143만CGT로, 93.5%에 달한다.

대형 선주 상당수가 유럽에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되면 LNG선 수주를 싹쓸이해 가격이 대폭 인상될 수 있다는 게 EU의 판단이다. 선주 요구를 수용할 만큼의 LNG선 건조 능력을 보유한 업체가 국내 3사와 중국 국유기업 후둥중화조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년간 LNG선 가격을 동결하고, 건조 기술도 다른 조선사에 이전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돕겠다는 계획을 EU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EU는 두 회사 중 한쪽의 LNG사업부를 매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터미널 등 자산 매각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 연말 합병 심사 ‘마지노선’
현대중공업그룹은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지만 LNG사업 매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 경우 대우조선 인수 효과가 사라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통해 조선부문 지배구조 체계가 정리된 상황에서 굳이 LNG 사업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수 마감 시한을 석 달 앞두고 EU를 설득하기 위해 마지막 협상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지역산업 붕괴와 구조조정을 이유로 합병에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올 들어 조선업이 호황을 맞은 가운데 충분히 독자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는 노조뿐 아니라 회사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가장 급한 건 산은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이 독자생존에 자신있으면 강력하게 말해달라”며 “그렇다면 모든 금융지원을 끊고 홀로서기하도록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합병 외에는 대우조선을 살릴 방안이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조선업계에선 EU가 더 많은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장 불허 결정을 내리지 않고 심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분석한다. LNG 사업 일부 매각 등을 전제로 ‘조건부 승인’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자산 매각 등에 대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추가 제안에 따라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은도 “심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연내 심사가 종결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심사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인 것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기업결합 심사가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민/이지훈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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