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경제 패권을 겨냥한 3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올 정도로 긴장감이 전방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간자 입장에 선 우리가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비판을 들을 만큼 세계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면 샌드위치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중 간 마찰과 코로나 사태가 겹친 중층적 여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세계가치사슬(GVC)이 약화됨에 따라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GVC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을 말한다. GVC가 약화되면 세계 교역이 위축돼 한국과 같은 수출 지향적인 국가일수록 더 큰 타격을 받는다.
대내적으로 경제 각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가계부채는 우리처럼 위험수위가 넘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을 조이면 그 충격이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돼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가계부채 절대액이 늘어나면서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2018년 11월의 악몽처럼 가계부채를 잡는 과정에서 경기마저 둔화될 경우 이를 살릴 수 있는 정책수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정책충돌로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이 쉽지 않다. 재정정책은 재정수지가 너무 빨리 악화돼 종전처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외환정책은 외화거래 내역을 공개해야 해 실질적으로 개입이 어려워졌다.
거시(성장과 고용)와 미시(기업 실적) 차원에서 대기업 쏠림과 착시 현상이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빅테크 기업이 부상하며 규제 법안이 나올 정도로 쏠림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민간기업의 ‘친미원중(親美遠中)’과 정책당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간 구성의 오류에 따른 혼란도 심각하다. 남북 관계에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할 ‘테일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대장동 사태’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듯 부패와 뇌물 사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정치적 영향력과 인허가 등 행정 규제에 비례한다.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는 ‘지대 추구형 사회’가 정착된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히 정치권에 대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경제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까지 놓쳐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아무리 좋은 신호를 주더라도 정책 수용층이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도 오래됐다. “한번 해보자” 하는 의욕보다 “벌면 뭘 해요, 다 뺏어가는데” 하는 벤자민 버튼 증후군이 경제 전반에 의외로 폭넓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다간 우리도 “베네수엘라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중장기적인 잠재 성장 기반과 관련해 저출산·고령화 속도도 너무 빠르다. 인력 수요와 공급 간 병목과 불일치 현상이 심해지면서 1990년대와 다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과 ‘K’자형 불균형으로 갈수록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모두가 쉽지 않은 과제다. 코로나 사태로 소상공인과 중하위 계층, 그리고 MZ세대가 어려울 때는 정치인과 경제 각료가 극단적인 위기론을 제기하기보다는 ‘마라도나 효과’와 같은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프로보노 퍼블리코’ 정신을 발휘한다면 회색 코뿔소와 퍼펙트 스톰을 불식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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