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첨단 무기를 도입하거나 성능 개량 등 국방사업을 추진하려면 먼저 사업타당성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타당성 조사가 끝나기 전에 예산배정부터 이뤄진 국방사업 규모가 지난 8년간 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사업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국방사업 예산이 편성된 사례가 42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규모만 28조3463억원에 달했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정부 예산사업에 대해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하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의무화돼 있다. 다만 국방사업은 특수성을 고려해 예비타당성 대신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실시하는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치도록 했다. 사업타당성 조사에서는 사업규모와 비용 산출근거, 도입방법의 경제성 등을 확인한다.
원칙적으로는 이처럼 사업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결과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업에 한해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업타당성 조사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군이 예산배정을 요구해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42건 중 30건은 예산배정을 마치고 사업이 개시된 시점에서도 사업타당성 조사가 끝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2조원 이상이 투입된 ‘해상초계기-Ⅱ’ 사업의 경우 2017년 예산배정을 마치고 사업이 시작됐지만 사업타당성 조사는 2018년 1월에서야 마무리됐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방사업 예산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매년 9월 제출하는 정부 예산안에 빠져 있더라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의 요청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증액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군이 사업타당성 조사가 완료되기 전 일단 예산부터 배정받으려고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 예산결산소위원회에서는 경항모 도입을 위한 착수 예산 100억원이 삭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항모 도입 예산은 아직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당초 정부 예산안에 빠져 있었지만 군의 민원을 받아들인 의원 요구로 심의 대상에 올라갔던 것이다.
당시 국방위 일부 의원들은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것을 확신하고 예산에 반영했다가 나중에 통과가 안 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반발했다.
홍영표 의원은 “긴급한 국방사업의 경우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를 마냥 기다리기 어려워 우선 예산배정부터 요구하는 군의 입장에 일부 공감한다”면서도 “가능하면 국회 예산심사 일정에 사업타당성 조사 일정을 맞추려는 군 당국의 노력과 제도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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