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 무너진 정부 출연연구소들, 해체 각오로 거듭나야 [사설]

입력 2021-10-05 17:22   수정 2021-10-06 06:26

정부 출연연구기관들의 연구비 횡령 같은 비리는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 자료를 보면 ‘해도 너무 한다’ 싶다. 연구소의 비위 실태가 거의 백화점 수준이고, 복마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소 25곳의 직원 징계 건수(2016년부터 올 8월까지 총 2649건)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내용이다. 연구장비 무단반출, 외유성 출장, 향응 및 뇌물수수,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은 과연 박사급 연구원이 1만 명 이상 된다는 엘리트 집단이 저지른 일이 맞나 싶을 정도다. 직장 내 괴롭힘은 물론 성희롱,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편법 정년연장이나 입시에 ‘아빠 찬스’ 동원은 ‘공정’을 표방한 이 정부에서 얼마나 기강이 해이해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비단 과학기술 분야만이 아니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작년 82건의 회의를 유명 호텔에서 개최해 약 53억원을 써 문제를 일으켰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회의가 일상이란 점에서 분명 과도한 지출이고, 방역지침은 준수했는지도 의문이다. 서울 송파구 공무원들의 초과근무 및 관내출장 수당의 부정수급 행태도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혈세를 이렇게 물 쓰듯 하고 개인 주머니로 착복하는 게 공공기관의 태생적·구조적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업인 연구개발(R&D)의 저(低)생산성은 더 큰 문제다. 정부 출연연구소는 연간 27조원이 넘는 국가 R&D비의 30%를 쓰면서도 낮은 성과, 중복 연구의 비효율, 국가적 문제 해결능력 부족 등을 끊임없이 지적받아 왔다. 2014년 이후 출연연 특허 중 40%가 기술보증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C등급 이하’라는 보도를 보면 왜 산업현장에서 출연연구소 기술을 “실험실 수준” “별 도움 안 된다”고 혹평하는지 알 수 있다. 각종 비리 등 기강 해이로 본업까지 부실해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해마다 지적되는데도 개선이 없는 출연연의 관리 부재, 비위 실태는 결국 솜방망이 처벌 탓이란 비판을 새겨들을 만하다. 비위자의 연금 수령 불이익 등 좀 더 강한 제재와 감사원 감사의 구속력을 높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기관들의 자정(自淨) 노력이다. 기관을 해체하고 거듭난다는 각오를 다져야 ‘과학기술 발전의 첨병’이라는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자율성 확보,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풍토 등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쇄신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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