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소 25곳의 직원 징계 건수(2016년부터 올 8월까지 총 2649건)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내용이다. 연구장비 무단반출, 외유성 출장, 향응 및 뇌물수수,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은 과연 박사급 연구원이 1만 명 이상 된다는 엘리트 집단이 저지른 일이 맞나 싶을 정도다. 직장 내 괴롭힘은 물론 성희롱,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편법 정년연장이나 입시에 ‘아빠 찬스’ 동원은 ‘공정’을 표방한 이 정부에서 얼마나 기강이 해이해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비단 과학기술 분야만이 아니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작년 82건의 회의를 유명 호텔에서 개최해 약 53억원을 써 문제를 일으켰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회의가 일상이란 점에서 분명 과도한 지출이고, 방역지침은 준수했는지도 의문이다. 서울 송파구 공무원들의 초과근무 및 관내출장 수당의 부정수급 행태도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혈세를 이렇게 물 쓰듯 하고 개인 주머니로 착복하는 게 공공기관의 태생적·구조적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업인 연구개발(R&D)의 저(低)생산성은 더 큰 문제다. 정부 출연연구소는 연간 27조원이 넘는 국가 R&D비의 30%를 쓰면서도 낮은 성과, 중복 연구의 비효율, 국가적 문제 해결능력 부족 등을 끊임없이 지적받아 왔다. 2014년 이후 출연연 특허 중 40%가 기술보증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C등급 이하’라는 보도를 보면 왜 산업현장에서 출연연구소 기술을 “실험실 수준” “별 도움 안 된다”고 혹평하는지 알 수 있다. 각종 비리 등 기강 해이로 본업까지 부실해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해마다 지적되는데도 개선이 없는 출연연의 관리 부재, 비위 실태는 결국 솜방망이 처벌 탓이란 비판을 새겨들을 만하다. 비위자의 연금 수령 불이익 등 좀 더 강한 제재와 감사원 감사의 구속력을 높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기관들의 자정(自淨) 노력이다. 기관을 해체하고 거듭난다는 각오를 다져야 ‘과학기술 발전의 첨병’이라는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자율성 확보,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풍토 등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쇄신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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