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급감하고 공급이 넘치던 ‘풍요의 시대’는 1년 반 만에 끝났다. 세계 경제가 팬데믹 위기에서 벗어나자 원유 천연가스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잡아야 하지만 산유국들엔 1년 전 유가 폭락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각국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힘을 쏟느라 화석연료 투자를 줄인 것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세계 원유 수요는 급감했다. 산유국들은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려고 논의했지만 사우디와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에 실패했다. 작년 3월 불거진 석유전쟁이다. 국제 유가는 곤두박질해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에선 지난해 4월 한때 석유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름 탱크가 가득 찼지만 수요가 적어 생산업체가 돈을 주고 기름을 빼야 했다는 의미다. 석유수입회사 레티고석유의 커크 에드워드 대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5~16개월 전만 해도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는 데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태양광 풍력 등에 투자를 집중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 화석연료 분야 투자는 급감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원유 매장량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유 기업들은 매년 자본의 80%를 재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석유산업 설비투자 비용은 2014년 7500억달러에서 올해 3500억달러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비축된 원유 생산량은 50년치에서 25년치로 줄었다.
친환경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자 투자자들은 석유나 가스 기업 투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투자 성향은 산업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석유 기업들은 새 유전을 찾을 때까지 주식을 팔거나 빚을 내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 기업들은 대규모 생산시설 확대 등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는 화석연료에 비해 값이 비싸다. 에너지 전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도 가격 인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사모펀드 킴퍼리지의 벤델 이사는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제한됐지만 해가 들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를 위한 배터리 저장 비용은 계속 필요하다”며 “앞으로 10년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장을 멈춰 세운 석탄 대란은 호주산 석탄 수입이 막히면서 시작됐다. 중국은 세계 1위 석탄 수입국이다. 여파는 인도로 번졌다. 석탄 화력 발전이 전체 에너지 공급의 66%를 차지하는 인도는 인도네시아산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산 석탄 가격은 6개월 만에 3배 넘게 뛰었다.
겨울을 앞두고 시작된 에너지 가격 상승 랠리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미국 기업들의 에너지 투자는 2019년보다 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겨울 한파가 심하면 내년 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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