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경제를 ‘하드 캐리’ 해온 기업인들은 정치판만 보면 탄식을 넘어 아예 체념하는 표정이다. 한국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에 진입했건만, ‘갈라파고스 정치’는 세상 변혁에 눈감고 예정된 미래조차 못 본 체하고 있어서다. 기존 패러다임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경제와 산업의 쓰나미 같은 큰 변화를 절절히 체감하는 기업인들로선 더욱 답답할 것이다.
대장동 게이트, ‘아빠 찬스’, 부동산 투기 등 숱한 사례에서 보듯 한국 정치인들에겐 ‘공익을 가장한 사익 추구’의 DNA가 엿보인다. 국민 상대로 거짓말은 기본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안 보인다. 표가 된다면 간이라도 빼줄 듯, 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이 돼간다. 이는 여야,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기득권 지배층에 내재된 고질병이다. 이런 꼴을 율곡 이이가 봤다면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권력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근대적 자기각성 없이 어쩌다 팔자 고친 나라가 됐기에, 그 현실 종합판인 정치는 늘상 ‘분노와 책임의 타자화’로 치닫는다. 그러니 갈등 해소와 사회 발전 동력으로서의 정치는 없고, 국가가 아니라 정권만 보는 공학과 공작만 남는다. 독기 어린 욕설·막말, 황당 궤변, 드러난 잘못조차 오리발 내미는 후안무치가 정치판의 일상다반사다. 저질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점에선 ‘OECD 최악’이다.
코로나 위기 한복판에 대전환의 복합위기가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수출 덕에 덜 심각해 보일 뿐이지 경기 부진, 공급망 대란, 주가 급락 등 위기 징후가 즐비하다. 수출마저 꺼지면 또다시 캄캄한 터널 속을 헤맬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 과잉, 공공 비대, 저성장, 저출산, 주거 대란, 격차, 부채, 취업 절벽, 노동경직성, 자영업 몰락, 교육 퇴행, 연금 파국 등 온갖 구조적 난제가 물 빠진 저수지 바닥의 쓰레기처럼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좋든 싫든 5개월 뒤면 5년 국가 경영을 맡길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지만, 더 큰 문제는 유력 주자들이 대개 사시를 패스한 법기술자란 점이다. “외우기만 한 공부가 나라 망쳤다”던 영화 ‘자산어보’ 속 정약전의 탄식이 절로 떠오른다. 조선시대 사서삼경이든, 현대의 6법전서든 달달 외워 출세한 이들은 세상만사를 선과 악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짙다. 도덕과 명분이 지배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모든 논쟁이 선악 대결로 치환되는 이유다.
이런 사회에 소금이 돼야 할 지식인들은 대개 어용 아니면 묵언수행이다. ‘정책 아닌 정치’로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입바른 소리 하는 경제학자가 별로 없다. 대법원장이 조롱감이 되고,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이 드러나도 법학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국제사회가 경악한 ‘언론재갈법’을 강행하는데 전국 언론학 교수들은 그 흔한 성명조차 없었다. 반면에 대선 캠프마다 차고 넘치는 게 교수다. 보편적 자연법이 무엇인지, 민주주의에서 기본권이 왜 중요한지, 경제현상이 정치·사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공부하지 않은 탓이다. 원칙도 없이 임기응변에만 능한 지식꾼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부박한 사회에서 더 천박한 정치가 나라의 공론 수준을 바닥도 모자라 지하로 끌어내렸다. 철학자 최진석은 “국가의 모든 일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시선의 높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갈파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또 5년 겪어야 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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