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원회를 떠받치는 ‘사무국’ 규모도 만만찮다. 사무차장 아래 국장급 4명, 과장 7명 등 정규 공무원만 59명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다. ‘탄소중립’을 외치는 이 위원회의 로드맵과 실행 시나리오에 대해 관계부처 공무원들조차 ‘탁상공론’이라고 쑥덕이고 있다. 전문성과 방법론, 경도된 시각에 대해 드러내놓고 비판하는 전문가가 부쩍 늘어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위원회 공화국’의 최근 사례일 뿐이다.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는 현 정부 들어 특히 급증해 622개에 달한다. 이름도 생소한 온갖 위원회가 급조되면서 이명박 정부 때 530개에서 이렇게 늘어났다. 지난 6월 말의 이 집계가 그새 또 얼마나 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지난 1년간 회의 한 번 열리지 않은 곳도 71개나 된다.
‘위원회 행정’도 잘만 운용하면 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책에 전문가 식견을 반영하는 통로가 되면서 관료들 독단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남용되면 문제가 적지 않다. ‘관변 학자’를 동원한 행정편의, 편향된 전문가를 내세운 책임회피 행정 같은 부작용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국민 감시망을 슬쩍 피해가는 ‘공공 비대화’다. 정원 외(外) 정원, 조직 외 조직으로 누적되는 정부 비효율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가 이러니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들도 툭하면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면피 행정’을 꾀한다.
‘공공 비대화’에 대한 우려는 기형적으로 커지는 조직과 인원 증가, 그에 따른 예산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공(公)자 붙는 조직이 커지면 간섭이나 규제도 덩달아 커진다는 게 더 문제다. 업무량과 관계없이 공무원은 계속 늘어난다는 ‘파킨슨법칙’이 한국에서 유난히 잘 맞는다는 지적이 과장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드러내놓고 그렇게 해왔을 뿐이다. 늘어난 정부위원회는 위험선에 달한 공공 비대의 또 한 단면이다. 이런 위원회를 기웃거리는 ‘폴리페서’가 늘어나는 등 ‘관변 생태계’가 발달할수록 민간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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