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청약 받으려면…" 월세 100만원씩 꼬박꼬박 내는 이유

입력 2021-10-07 10:00   수정 2021-10-07 14:50


인천에서 분양을 계획하고 있는 무주택자 윤석현 씨(34)는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 보증금은 3000만원 가량으로 적지만 월세는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부담이 적지 않지만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를 사는 이유는 청약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로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에 대한 집단대출이 중단되는 상황을 보면서 목돈을 쥐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씨는 "높아진 집값에 시세보다 낮은 로또 청약을 기대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안 그래도 청약 당첨 가능성이 낮은데 만약 운좋게 분양을 받고 나서도 대출이 나오지 않아 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월세를 택했다"고 말했다. 대출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계약금이 20%인 경우도 많다보니 현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신용 및 전세 대출에 이어 최근 중도금 대출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자 예비 청약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보유 현금이 많지 않은 청년이나 서민층들은 자칫 청약을 넣었다가 대출이 나오지 않아 당첨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불안해 하는 분위기다. 일부 청약 대기자들은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를 부담하면서까지 현금을 쥐고 있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일 주택·분양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순위 청약을 받은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의 시행사는 입주자모집 공고를 통해 분양물량 전체에 대해 중도금 불가 방침을 안내했다. 일반적으로 중도금 대출 상한선인 분양가 9억원을 넘지 않는 민간분양 물량에 대해선 시공사 알선에 따라 시중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사업장의 총 211가구 중 절반은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 분양가 9억원 이하였다.

중도금 대출 중단 여파는 현재 공공분양 아파트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파주운정3지구 A17블록과 시흥장현 A3블록 공공분양 단지의 입주자모집공고를 내면서 대출규제로 중도금 대출이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인천검단 AA13-1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모집공고에서도 “금융권의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인해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함을 알려 드린다”고 했다.

몇 년 전 경기도 하남시 한 공공분양주택 청약에 당첨돼 다음달 입주를 앞두고 있는 최모 씨(40)는 걱정부터 앞선다. 입주를 앞두고 잔금 대출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최씨는 2억원 가량의 잔금 대출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전세 보증금을 빼고 월세로 이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최씨는 “일부 은행들이 분양가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낮췄다는데 그마저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시달린다”며 “외벌이라 월세 내기가 빠듯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 글이 잇따른다. 한 청원인은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 데 집단대출을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라고 지난달 27일 올렸다. 다른 청원에서도 한 글쓴이는 “수차례 청약 끝에 첫 집을 장만했는데 자금이 부족해 집단담보대출을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집단대출을 막는다는 날벼락 같은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금융기관의 집단대출 한도 축소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NH농협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율이 금융당국 가이드라인(5~6%)을 넘어서자 공식적으로 신규 집단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지난 8월 신규 중단을 발표하기 전에 일부 기승인 났던 대출만 추가로 진행하고 현재는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요인을 포함해 복합적인 이유로 시장에선 월세 비중이 급격히 느는 중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1만4138건 8월 한 달간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임대차 계약 1만4299건 중 월세가 조금이라도 낀 계약은 5783건(40.4%)이다. 전월(35.8%)보다 4.6%포인트 급증했다. 올 들어 월세 비중이 4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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