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근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 재고 현황 등 기밀에 해당하는 영업정보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7일 한 곳에 모여 대응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경제 이슈와 안보 문제를 결부해 논의하기 위해 이달 중순 새로 출범하기로 한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열고 미국의 반도체 정보제공 요청 동향 및 대응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엔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안일환 청와대 경제수석, 김형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참석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관보를 통해 삼성전자, 대만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를 향해 최근 3년치 매출과 고객정보, 재고 현황 등 핵심 영업정보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영업정보는 반도체 업체들이 대외 협상력 유지 등을 위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자료로, 미국 정부로 넘어가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반도체 업체의 경영에 큰 제약이 생길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공식 요청이 지난달 알려진 이후 그동안 한국 정부는 공개적인 반응을 꺼려왔으나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요구가)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이례적인 조치"라며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는 처음으로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산업부는 또 바로 다음날인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국내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지난 이틀간 산업부 차원에서 공개적인 우려의 뜻을 표명한 데 이어 이날 홍 부총리가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과 함께 미국의 반도체 영업정보 요구와 관련한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정부가 밝힌 것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회의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에 우회적으로 불만의 뜻을 표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또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제1차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서 미국의 반도체 영업정보 요구 문제를 집중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반도체 관련 요구가 국내 안보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는 공급망 재편 등 안보와 직결된 경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지난달 27일 정부가 새로 만들기로 결정한 장관급 회의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구축된 반도체 협력 파트너십을 토대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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