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불안한 미래? 숫자를 봐라, 세상은 좋아졌다

입력 2021-10-07 18:31   수정 2021-10-08 01:52


요즘 세상에 미래를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500만 명을 넘어섰다. 기후 온난화로 날씨는 이상해지고 있다. 곳곳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호전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때에 정치인들은 영 못마땅하다.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지금 다시 계몽》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주의를 반박한다. 핑커는 2011년 펴낸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통념과 달리 인류사에서 폭력이 감소했음을 보여줬다. 이번엔 75개에 달하는 그래프와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기대수명, 건강, 식량, 안전, 불평등, 환경, 민주주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인류의 삶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부정적인 뉴스에 눈길이 쏠린다.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핑커는 “어느 기자도 카메라 앞에서 ‘저는 지금 전쟁이 터지지 않은 나라에서 생중계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거나, 폭탄이 터지지 않은 도시, 총격이 일어나지 않은 학교의 사정을 전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지식인은 비판해야 돋보인다.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부정 편향’이 지식인 세계에 만연해 있다.

그는 “세계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숫자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와 비슷한 견해다. 숫자로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세계는 200년 전보다 약 100배 부유해졌고, 대중의 믿음과 달리 부는 더 고르게 분배됐다. 매년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 비율은 1980년대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20세기 동안 미국인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96%, 화재로 사망할 가능성이 92% 줄었다. 세계 인구의 기대수명은 18세기 중반 35세에서 2015년 71.4세로 늘었고, 유아 사망률은 지난 70년 사이 100분의 1로 줄었다.

현재 가난한 미국인은 150년 전 최고의 부자도 사용할 수 없었던 전기, 에어컨, 텔레비전을 마음껏 쓴다. 1987년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는 벽돌 같은 휴대 전화기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남수단의 거리 행상인도 그보다 좋은 휴대폰을 갖고 있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지능지수(IQ)가 100년 동안 30이나 증가했는데, 이는 더 나은 영양과 교육 덕분이다.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1%만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3분의 2로 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고 핑커는 개탄한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세계는 인간의 안녕과 복리의 모든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뤄왔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른 문제에서도 거침없다. 그는 테러의 위험은 과장됐다고 말하고, 환경과 관련한 비관적인 전망은 모두 틀렸다고 지적한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나이 든 사람의 이데올로기로, 세대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계몽주의는 순진한 희망이 아니며 실제로 작동해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옹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몽주의는 선동자들이 즐겨 이용하는 인간 본성, 즉 부족 중심주의와 권위주의, 악마화, 마술적 사고 등에 반대한다. 하지만 지금 계몽주의는 서양 문명이 구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비관주의자들에 의해 맹렬히 공격당하고 있다. 핑커는 인류를 발전시킨 것은 계몽주의며, 이 계몽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인류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너무 낙관적이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그는 일부 문제에 대해 그냥 놔두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란 식으로 말한다. 비관적인 견해를 펴는 이들을 반계몽주의자로 모는 것도 지나쳐 보인다. 세상에 낙관주의자만 있었다면 인류의 삶이 지금처럼 나아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모두 필요하고, 그의 책은 그동안 너무 부정적인 시각에 치우쳤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로잡는 균형추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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