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도둑 맞고 핍박 받고…한글 고난의 역사

입력 2021-10-07 18:28   수정 2021-10-08 01:54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인기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한국어 한두 마디쯤 하는 게 유행이 됐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는 반찬, 먹방, 오빠 등 26개 한국어 단어가 새로 추가됐다.

어린이 책 작가인 정영애 씨는 《날아라 훈민정음》에서 “예전에 미국에 이민 간 동포들은 일부러 한글을 모르는 척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했다. 청소년에게 한글의 뿌리와 역사를 알려주는 이 책은 큼직한 글씨에 다양한 사진 자료를 담아 쉽게 읽힌다.

책은 도굴꾼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훈민정음해례본 이야기로 시작한다. 1999년 도굴꾼 서모씨가 경북 안동 광흥사 나한상의 등에 있는 문을 열고 여러 권의 책을 훔쳐갔는데, 나한상 안에 귀중한 문화재가 들어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던 때였다. 그런데 서씨도 그 책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고 고서적 수집상에 팔아버렸고, 수집상 조씨는 2008년 자기 집에 있어야 할 책이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고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어 저자는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상에 딱 두 권 남아 있는데 온전한 것이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이야기로 넘어간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졌지만 보급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한글을 낮잡아 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시 억압받던 불교계에서 훈민정음 보급에 힘썼다고 한다. 그리고 낮은 계층의 부녀자와 기생, 어린이들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익혀 나가면서 서서히 조선 사회에 훈민정음이 퍼져나가게 됐다.

책은 이렇듯 조선 시대 역사와 함께 한글이 어떤 고난을 겪으며 살아남았는지, 부모가 아이에게 들려주듯 구어체로 한글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 책은 영문번역본도 묶어서 두 권이 합본으로 같이 나왔다. 서울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정진원 학생이 외국인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직접 번역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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