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00억에 사온 슈퍼컴퓨터, 7800만원에 고철처리

입력 2021-10-08 14:17   수정 2021-10-08 15:20


기상청이 몇 백억원 대의 슈퍼컴퓨터를 사온 뒤 5년마다 교체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처리계획 없이 헐값에 이전 슈퍼컴퓨터를 고철처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처분시점에도 여전히 슈퍼컴퓨터로서 가치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상청은 이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지 못했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인만큼 도입단계부터 재활용 계획을 마련하는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92억원 들여놓고, 회수는 고작 7920만원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8일 기상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슈퍼컴 도입 및 사용 연한 만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상청이 처음 166억원을 들여 2000년 도입한 슈퍼컴 1호기는 2006년에 120만원에 고철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에도 고철처리는 반복됐다.

기상청은 2005년 485억원에 슈퍼컴 2호기를 도입했고, 2010년에는 541억원에 수퍼컴 3호기를 구매했다. 하지만 두 컴퓨터를 합쳐서 회수된 금액은 1026억원 중 7,800만원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슈퍼컴 1~3호기 도입비용 1,192억원 중 재매각으로 고작 7,920만원을 회수한 셈이다. 특히 슈퍼컴 3호기의 경우, 매각 당시 평가가치가 여전히 100억원을 넘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기상청은 이를 적정 가치로 처분하지 못했다.


기상청은 올해 6월에도 슈퍼컴 5호기를 628억원의 비용을 들여 도입했다. 자연스레 2015년 도입한 슈퍼컴 4호기 '누리'와 '미리'는 처분될 예정이다. 현재 누리의경우 세계 209위, 미리는 세계 210위로 4호기 역시 여전히 전세계 TOP 500위 슈퍼컴퓨터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4호기 역시 구체적 처분 계획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4호기 역시 이전처럼 헐값에 '고철처리'될 수도 있을거란 관측이다.
"도입시 사전 처분 계획 마련해야"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계약 당시부터 계약사와 슈퍼컴퓨터의 처리방안을 합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사에게 슈퍼컴퓨터를 사올 시점에 "계약사가 슈퍼컴퓨터를 재구매해간다"는 조항을 넣는 방식 등이다.

미국은 조달?구매 단계에서 이미 슈퍼컴퓨터 연한 만료 후 계약사가 어떻게 수거하고 재구매하는지에 관해 사전 계약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영국 기상청 역시 사용만료된 슈퍼컴퓨터를 계약사가 처리하도록 미리 계약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컴퓨터의 높은 성능을 고려해, 체계적인 민간 양도 처리 절차를 밟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구형 슈퍼컴을 대학교 및 민간 연구기관에 이전하는 프로그램인 'PRObE'를 현재 운영하고 있다. 실제 Los Alamos에 위치한 시설에서는 구형 정부기관 소속 슈퍼컴퓨터를 용도 변경해 각종 연구시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슈퍼컴퓨터의 일부를 한국과학기술원 부설고등과학원이나 농촌 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등에 기부한 경우가 있지만, 일부일뿐 체계적으로 기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

차라리 저개발 국가에 외교 차원으로 기부하는 것도 방안으로 제시된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저장장치는 제거하고 개발도상국의 기초 연구를 위해 인도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이다.

실제 미국 텍사스주립대 텍사스 첨단 컴퓨팅 센터 'Ranger'는 저개발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기부되어 다양한 과학분야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세 의원은 "몇 백억원 대의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임에도, 정부는 그동안 '주먹 구구식'으로 슈퍼컴퓨터 처리 문제를 다뤄왔다"면서 "이젠 우리도 퇴역 슈퍼컴 대책을 논의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 체계적인 연구 용역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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