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과 물가 상승 등 다른 악재들이 부상하며 관심이 덜하지만 헝다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산매각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끄고 있다지만 거대한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헝다 사태 초기 우려됐던대로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의 유동성 위기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헝다가 가져올 중국 경제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망이 있다. 위기가 이미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는 다른 복합적인 문제와 맞물려 199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붕괴와 같은 위기 혹은 장기 경제 침체를 부를 것이라는게 첫번째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정부가 사전에 계획한 경로를 따라 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만큼 파국적인 결과는 없을 것이며, 오히려 중국 경제의 체질이 개선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헝다를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은 중국 정부의 역량에 대한 신뢰 여부에서 갈린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크고 작은 위기를 넘겨왔고, 국가 주도의 개혁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는 점이 낙관론의 근거다. 비관론은 만에 하나 이같은 경로를 벗어날 가능성에 뿌리를 둔다.
어느 쪽의 전망이 들어맞든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산업의 부채 규모는 18.4조 위안으로 중국 GDP의 18%에 이른다. 관련 산업의 붕괴는 지방정부와 가계금융은 물론 국가 발전 모델까지 위기로 몰아넣는다.
1994년 조세 제도 대개편으로 중국에서 지방 정부는 부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지방정부들은 높은 성장률 달성을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토지 사용권을 매각해 자금을 끌어오게됐다.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만 공유지 판매가 연 평균 31%씩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품을 악화시켰다. 5860억달러에 이르는 경기 부양 패키지의 대부분이 부동산 개발자를 위한 대출 및 지방정부 재정 보조를 위해 쓰였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부동산과 건설, 기타 관련 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이른다. 주택 시장이 대마불사 경지에 다다르면서 사업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
하지만 수십년간 이어진 집값 상승으로 수요 기반 자체가 약해졌다. 올해 8월 중국 선전의 주택 거래 건수는 2423건으로 작년 월평균 8376건 대비 급감했다. 이는 부동산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는 지방 재정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지방정부 자금 조달 창구인 토지 판매가 어려워지는것이다. 이는 이전부터 문제가 됐던 지방 정부 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토지를 비롯한 중국의 총 정부 판매 수입은 2020년 GDP의 8.3%에 달했다."
이같은 문제는 결국 경제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진다는 전망으로 연결된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로 일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하고 내막을 취재했던 길리언 테트의 최근 칼럼이다.
"최근 헝다사태와 가장 비슷한 것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아닌 1997년 일본 훗카이도타쿠쇼쿠 은행의 파산과 그에 따른 일본 금융위기다. 물론 헝다는 부동산 개발사로 금융사가 아니다. 하지만 자체 신용이나 자금이 아닌 정부에 의존해 사업을 해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버블 붕괴 이전의 일본 경제가 그랬듯 중국도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해왔으며, 개별 기업의 자금 조달과 흥망도 시장이 아닌 정부의 판단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시스템은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중심 경제에 시장 시스템의 도입을 늘릴 수 밖에 없다.
인민은행이 제시한 부채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헝다사태가 촉발된데서 알 수 있듯 중국은 이같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 시스템에 속해 있던 은행 및 기업의 신용경색을 낳지만 구조전환을 목표로 하는 정부는 지원에 나설 수 없다. 1990년대 후반 일본이 그랬듯 지금의 중국 정부가 적지 않은 파급력에도 헝다 지원에 미온적인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의 사례를 심도 깊게 연구했을 중국은 훗카이도은행 사태의 재연을 피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또다른 문제다. 훗카이도은행과 마찬가지로 헝다 파산은 장기간의 불경기를 불러왔다."
오히려 이같은 출혈을 감내하면서도 경제 체질 개선을 이루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체질 개선에 성공한 중국이 더 무서운 경쟁자로, 혹은 새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 교수의 말이다.
"헝다 사태가 중국 경제를 크게 흔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미 2018년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부채 구조조정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당시부터 중국 정부는 현재 경제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해 부채를 줄여왔다.
정부 주도 경제인 중국이 다시 정부 주도로 중장기적인 리스크를 줄여가는 경로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까지 20여개 국유기업을 파산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유기업에 대해서는 좀처럼 취하지 않는 조치가 내려졌다.
국유기업의 채권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기업들 역시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오는 일이 줄었다. 중국의 금융 기능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 경제 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만약 이같은 부채 구조조정이 경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문제에 영향을 주게 되면 구조조정 속도를 늦추면 된다. 헝다 사태 등이 중국 정부가 예상한 것 이상의 충격을 가져올 수 없는 이유다. 에너지 대란 등 최근 몇몇 악재는 새롭게 나타난 것인만큼 상황에 따라 중국 정부가 일부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사실 이같은 부채 구조조정은 2000년대 후반부터 계획됐던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조금 지체된 부분이 있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점도 헝다발 위기 발생의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개별 기업의 도산이 경제 충격까지 이어진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집권층 스스로가 경제적 지대를 적극적으로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정치 구조의 특징은 설사 위기가 터지더라도 훨씬 적은 비용으로 극복할 동력이 된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돈을 풀기보다 부채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점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악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등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영역 대부분은 한국 기업이 이미 손 털고 나왔거나 애초에 진출하지 않은 분야다. 구조조정 작업이 완료된 이후 중국 경제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에 주목해야 한다.
부채 구조조정을 통해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 및 시장의 체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 적극적인 시장 개방에 나설 수 있다. 지금은 막혀 있는 IT플랫폼과 금융시장 등에서도 외국 기업의 활동 공간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경로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15년을 전후해 시진핑이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의 10년 집권을 넘어 15년 집권을 겨냥한다는 보도가 해외에서 나왔을 때다. 당시 기자가 만났던 국내 중국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해외 매체의 성급함과, 이를 여과없이 보도하는 국내 매체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10년째를 맞는 올해, 추가 5년의 집권은 기정사실화됐고 20년 집권도 가능한 상황이다.
헝다 사태 역시 외부에서 강제된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충격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계획된 범위에서 이뤄진 일이라도 그 파급효과까지 예상 범위에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호주산 석탄 수입 감축은 중국 정부의 계획이었겠지만 그에 따른 최근의 전력난은 계획 바깥의 일이다.
팬데믹 이후 갖가지 변수가 부상하는 지금, 헝다 사태가 다른 요인과 결합해 예상 밖의 파국을 낳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봉교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중국 산업과 경제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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