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 주일 한국대사가 지난 6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일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소리를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앞서 대사 내정자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일본이) 북방영토를 러시아에 빼앗겨 점유당했다”고 한 발언을 지적한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입니다.
강 대사는 ‘북방영토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 뭐냐’는 조 의원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며 “역사적 팩트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성을 높입니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조 의원이 “우리나라 주요 현안에 대해서 주일대사처럼 중요한 자리에 가신 분이 본국 정부의 입장이 뭔지 정확히 알고 가야된다”며 “북방영토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입장은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다그치자 강 대사는 “국회의원 시절에 갔던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답한 것”이라고 오히려 화를 냅니다.
난데없이 한국 국회에 등장한 소위 ‘북방영토’는 일본이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 남부의 네 개 섬(쿠나시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중·일 국경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처럼 언론에서 표기할 때도 어떤 용어를 먼저 쓸지에 대해 명확히 규정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원칙입니다.
정부가 관련 입장 자체를 내는 것을 꺼리는 북방영토가 한국 정치권에 등장하게 된 것은 10년 전인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도 그 핵심에는 당시 야당(민주당) 의원이었던 강창일 대사가 있었습니다. 2011년 5월 국회 독도특별위원회 소속의 강창일, 문학진, 장세환 의원이 한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북방영토 중 한 곳인 쿠나시르섬을 방문했습니다.
이 일로 일본 정치권은 뒤집어집니다. 제3국 국회의원이 영토 분쟁 지역을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실효지배하는 지역이다보니 강 대사는 당시 러시아를 경유해 이곳에 들어갔습니다. 마츠모토 타케아키 당시 일본 외상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식 항의했고, 무토 마사토시 당시 주한 일본대사는 외교통일부(현 외교부)를 항의 방문합니다.
특히 일본 자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은 울릉도를 통해 독도에 입국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김포공항에서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규정에 따라 입국이 거부되기도 합다. 당시 정부와 민주당 지도부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동일본 대지진 직후 한국의 대규모 구호성금 등으로 비교적 순탄하던 한·일 관계에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지난해 말 강 대사가 당시 “북방영토는 러시아 영토”라는 발언을 했다고는 것이 알려지며 강 대사의 주일대사 내정에 대한 일본 내 반발도 거셌습니다. 이 반발을 의식한듯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빼앗겨 점유 당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발언이 10개월여만에 다시 국회로 소환된 것입니다.
남(南)쿠릴열도(북방영토) 분쟁은 역사적으로 복잡합니다. 러시아와 일본 모두 1600년대부터 자국이 영토로 삼은 곳이라 주장하지만 이곳에는 원래 원주민인 아이누족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855년 러·일 양국은 시모다 조약을 통해 일본의 북방 국경을 이투루프섬과 우루프섬 사이로 정하고 사할린섬을 양국 공동 거주지로 삼았습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북방영토는 일본 영토입니다.
20여년 뒤 러·일 양국은 상트페테르부루크 조약을 맺습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일본은 사할린섬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대신 기다란 쿠릴열도 전체를 손에 넣습니다. 1905년 일본의 우리 국권 강탈이 본격화된 계기가 된 러·일 전쟁이 종료된 뒤에는 남(南)사할린까지 손에 넣습니다. 소위 북방영토에 대한 일본의 완전한 점유는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집니다.
문제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불거집니다. 소련은 일본의 패망 직후인 1945년 9월 쿠릴 열도 전체를 점령합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일본이 쿠릴 열도 전체의 영유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분쟁의 불씨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네 개의 섬 중 남쪽 두 개 섬인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미·일 안보조약을 문제삼으며 이를 무산시킵니다.
남쿠릴열도(북방영토)는 독도나 센카쿠열도 등 일본의 다른 영토 분쟁지역과 달리 현재까지도 실제 양국이 반환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는 지역입니다. 2018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고 4개 중 2개의 우선 반환을 타진합니다. 현재까지 이 논의는 지속되고 있는데 러시아는 일본에 쿠릴 열도 부근의 주일미군 배치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양국 정상이 관련 논의를 계속하던 것과 달리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일대 해역 지질조사, 지대공 미사일 훈련 등에 나섰고, 일본은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한다고 밝히는 등 다시 양국이 거칠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일본 영토를 빼앗은 것”이라는 강 대사의 발언은 이 와중에 나왔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모두 핵심 동맹국으로 삼고 있는 미국은 독도를 지칭할 때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합니다. 지난 7월 일본이 13년 연속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내놓은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의 주권에 대해서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리앙크루암은 미국이 독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독도’와 ‘다케시마(독도를 부르는 일본 명칭)’ 중 한 명칭만 써도, 두 명칭을 모두 쓰더라도 어떤 걸 먼저 쓰는지에 따라 양국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외교가에서는 강 대사의 발언에 우려가 나왔습니다. 한국 국회에서 “러시아가 일본 땅을 빼앗은 것이 역사적 팩트”라고 소리치는 주일대사의 돌발 발언에 한국과 상관없는 러·일 영토분쟁에 한국이 일본 편이라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논란 거리를 만들기엔 한·일 양국 사이의 문제는 이미 너무 산적해 있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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