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범죄 피해자는 물론 국선변호인 쪽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 국선변호인은 정부가 수사·재판 과정을 거치는 성폭력 및 아동·장애인 학대 피해자에게 무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이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2012년 도입한 제도다.
피해자 사이에서 “서비스 질이 낮다”는 비판이 나오자 법무부는 ‘국선변호인은 대면 상담, 의견서 제출, 피해자 조사 참여 등의 업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도 시행에 지난 5일 나섰다. 법조계에선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피해자 국선변호인의 수당을 현실화하지 못한 법무부가 변호사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호사업계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 피해자의 변호 수임료 시세는 건당 150만~200만원이다. 그동안 비전담 피해자 국선변호인은 대면 상담 2만원(10분당), 의견서 제출 10만원, 피해자 조사 참여 20만원 등 업무별로 수당을 받아왔다.
모든 절차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수당은 건당 30만~40만원으로, 일반 수임료의 4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을 도와준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법무부가 5일 ‘기본업무·기본보수제’ 시행에 들어가면서 “국선변호인의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는 수사·공판절차 등 사건 진행 단계에 따라 기본보수 40만원과 20만원을 각각 묶어서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대면 상담, 의견서 제출, 피해자 조사 참여 등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적으로 수행하게끔 강제했다. 박상수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은 “피해자 국선변호는 대질조사 등이 잡히면 변호에 40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며 “변호사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수당을 주면서 피해자 변호를 맡기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비전담 국선변호인으로 일하는 이현주 변호사는 “대면 상담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규정한 것은 법무부가 국선변호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최근 국선변호를 그만두는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남아 있는 변호사들에게 일이 계속해서 몰리는 상황”이라며 “국선변호인 사이에선 ‘우린 인권 없는 인권변호사’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법무부가 추진 중인 형사공공변호인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형사공공변호인제는 단기 3년 이상 법정형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 중 사회적·경제적 약자에게 수사 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법무부는 이 제도 도입을 위해 형사소송법 및 법률구조법을 지난 7월 입법예고했다. 한 법조인은 “예산 부족으로 피해자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중범죄 피의자까지 보호하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피해자 국선변호 제도의 내실부터 다지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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