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리스크에도 어쩔 수 없이 지분 매각"…삼성家 남은 상속세 8조

입력 2021-10-10 17:21   수정 2021-10-11 00:26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들이 경영권 약화 리스크에도 주식 매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상속세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유족에게 매겨진 상속세는 약 12조원으로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다. 지난 4월 서울 용산세무서에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선납해야 할 2조원을 냈고, 이번 주식신탁계약으로 2조원에 대한 재원 마련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8조원의 상속세를 더 내야 한다. 주식담보대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금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분 매각도 만만치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가족들이 힘을 보태야 하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인의 경영 의지를 꺾는 과도한 상속세율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내년 4월까지 2조원어치 주식 매각
이 회장의 유산 중엔 주식이 19조원으로 가장 많다. 부동산과 예금 등이 4조원, 미술품이 약 3조원으로 알려졌다. 주식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3조1000억원, 이 부회장 2조9000억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2조6000억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2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그간 소유 주식을 법원에 공탁해 왔다. 공탁은 유가증권을 법원에 임시로 맡겨 법률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일컫는다. 유족의 경우는 상속세의 연부연납 허가 시 세금 납부나 징수를 담보하기 위한 ‘납세보증공탁’에 해당된다.

유족들이 이번에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활용한 ‘주식신탁’ 상품은 은행에 수수료를 일부 떼어주고 주식 매각과 관련된 업무 일체를 맡기는 구조로 돼 있다. 신탁에 맡긴 주식 규모는 홍 전 관장이 삼성전자 주식 1조4258억원(0.33%)으로 가장 많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SDS 지분 1.95%에 해당하는 약 2422억원을 신탁했다. 이서현 이사장은 약 5000억원에 해당하는 삼성생명 주식과 삼성SDS 주식에 대해 신탁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 모두 8일 종가 기준으로 계산됐다.

국민은행 측은 유족들의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세부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공시로 알려진 계약 기간인 내년 4월 25일까지 국민은행이 주식을 팔지 못할 수도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최소 주식 매각 가격 등을 계약에 담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유족 중 유일하게 주식 신탁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 1.63%를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주식 10.44%를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간접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부동산 매각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식 처분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속세율, OECD 국가 중 1위
이번 주식 처분을 계기로 경제계에서는 또다시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대한 비판과 함께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면 최대 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한 할증률까지 적용하면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60%로 일본보다 높다. OECD 평균인 27.1%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국내에도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만, 대상이 일부 중소·중견기업(자산 5000억원 미만 중소기업 및 3년 평균 매출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인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유족은 천문학적인 상속세 부담을 떠안았다. 구광모 LG 회장은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2018년 ㈜LG 지분 8.8%를 상속받았는데, 세금만 약 7200억원에 달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남긴 유산으로 30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떠안았다.

경제계는 상속세를 적어도 20~3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 목적에서다. 상속세율을 낮추지 못하면 적어도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보장을 위해 ‘1주=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두는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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