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량안전법으로는 건설재해 못 줄인다

입력 2021-10-10 17:37   수정 2021-10-11 00:06

건설안전에 관한 3대 법체계가 갖춰지기 일보 직전이다. 3개 법 모두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체계와 내용인 데다 난삽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데칼코마니다. 앞서 졸속 입법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화염에 기름을 끼얹을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실효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닌 법이 양산되고 있다. 정치·행정의 무능에 위선이 조합된 결과다. 현장에서는 안전법이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불만이 쌓여 가고 있다. 실질적인 안전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법무법인·컨설팅기관의 비즈니스와 집행기관의 권한 확대에만 비단길을 깔아주고 있다. 일찍이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난폭한 정부는 기존의 법을 잘 집행하려 하기보다는 즉시 악을 억지한다는 명분으로 가혹한 형벌을 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엄벌주의와 보여주기 법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최근 입법되고 있는 안전법을 보노라면 몽테스키외가 경계했던 병폐가 현실에서 일상이 되고 있다.

법이 조잡하게 입법화될 때 재해 예방에 어떤 역기능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가뜩이나 낮은 안전법규의 규범력과 신뢰를 땅으로 추락시키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마당에 건설안전특별법까지 기존 발의 내용으로 제정된다면 건설현장은 패닉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건설사는 비용을 많이 들이면서도 재해 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소 건설사는 아예 체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외양적으로 건설안전 관계자별로 역할을 설정했다고 그럴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체계와 내용 모두에서 문제투성이다. 먼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 사항이 곳곳에 있다. 명확성 원칙은 민주주의 원리다. 이에 위배되는 규정이 많다는 건 민주주의를 거역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법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면 법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이 없게 된다. 이런 법에서 건설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둘째,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예컨대 원청이 하청근로자의 불안전행동에 대한 조치까지를 포함한 모든 안전조치를 직접 해야 한다는 식이다. 또 발주자 의무가 실효성을 담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감리자와의 관계가 모호해 발주자는 책임에서 비켜나 있고 감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폐해가 고착화될 것 같다.

셋째,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거나 충돌되는 내용이 상당수 규정돼 있다. 건설사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중제재까지 발견된다. 가히 ‘기승전-처벌’이라고 할 만하다. 세련되고 실효적인 예방 기준을 만드는 일은 등한시하고 처벌을 법정책의 최우선 수단으로 상정하는 정치적 퍼포먼스에 올인하고 있다.

건설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정치권과 행정부처가 ‘묻지마 규제’를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고리부터 끊어내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우를 재차 범해선 안 된다. 안전 문제에서 무능한 정치·행정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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