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시장의 주류 판매 방식인 렌털이 아닌 '직접 구매'로 국내외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험난한 길이 예상됐지만 시장 어필의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작년 3월부터 본격화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수기와 정수기 필터 제조·판매 기업 피코그램의 이야기다.
최석림 피코그램 대표는 12일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대·중견기업을 비롯해 100여곳이 진출한 국내 정수기 시장에서 피코그램의 진가가 발휘될 날이 멀지 않았다"며 성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 대표는 스위스카타딘연구소와 웅진코웨이 등에서 정수소재 개발연구원으로 10년간 근무하다 해외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2002년 창업에 나섰다.
피코그램은 소재와 필터, 정수기 완제품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다. 특히 필터 부문의 경우 연간 300만개가 넘는 정수필터를 생산해 세계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객이 방문기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필터를 바꿀 수 있는 '원터치 자가교체형 필터 시스템'이 핵심 기술이다. 배관과 공구가 필요한 일반 필터 교체 방식과 달리 남녀노소가 쉽게 탈착하는 방식으로 직접 교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 맞춤형 기업으로 주목 받는 이유다.
피코그램은 필터 교체 기능을 탑재한 자체 브랜드'퓨리얼'을 2016년 출시했다. 렌털이 아닌 일시불로 팔았다. 가격은 19만9000원. 고객들이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20만원 미만부터 최저가 가격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이처럼 자체 브랜드에 저가, 일시불 전략을 적용한 것은 우리나라 정수기 시장에 끼어 있는 가격 거품을 빼겠다는 동기가 컸다. 최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방문판매 방식이 굳어지면서 국내 가정에 들어선 정수기들은 기능보다는 과시가 목적이 됐다. 외관에 집중하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5년 렌털 총액을 계산해보면 고객이 200만원어치 냉온정수기를 쓰는 게 되더라"면서 "정수기는 필터 본연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필요 없는 기능은 최대한 줄이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퓨리얼 매출은 대부분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해외 진출에 앞서 국내 시장 검증이 필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말레이시아 법인을 설립하면서 해외 시장 진출도 최근 초읽기 단계에 들어섰다. 최 대표는 기존의 위탁생산 매출을 퓨리얼 매출로 치환하겠다는 전략이다.
최 대표는 "남아메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에 퓨리얼 공급이 의논되거나 진행 중인 상황이고 해외 수출을 작년부터 가동한 만큼 관련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상태다. 기존에는 정수기 판매사를 위한 위탁생산이 우리의 주된 사업영역이었다면 이제는 퓨리얼로 해외 매출을 확대하려고 한다"며 "국내에서도 간이형 정수기 등 상품군을 보다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핵심 정수필터 소재인 카본블럭에 대한 점유율 확대 의지도 크다. 현재 국내 카본블록 시장은 800억원 규모로 이 중 70~80%를 한독크린텍이 장악하고 있다. 피코그램은 2~3년 안에 점유율 20~30%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이 일환으로 최근 정수기의 카본블럭 제조기술에 대한 국제특허(PCT)를 출원하고 미국위생협회(NSF) 인증을 획득했다.
이달 19일부터 20일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하며 같은달 25∼26일 양일간 일반 청약을 받는다. 코스닥시장 상장 예정 시기는 11월 중이며 대표주관사는 IBK투자증권이다.
피코그램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소유주식수 189만5000주(공모 후 61.9%)에 대해 6개월의 보호예수(락업) 기간에 6개월을 연장해 총 1년의 락업을 걸었다. 다만 자기주식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스톡옵션 교부를 위해 상장 후 6개월간만 락업되도록 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의 20%가량은 카본블럭 관련 설비 투자에 활용할 계획이다. 상장 이후 카본블럭 생산량 증가에 따라 생산능력 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2022~2023년 15억원 규모 카본블럭 자동화 생산설비를 증설할 방침이다. 기타 금액은 상품 라인업 확대, 신기술 연구개발비용과 연구소 인력 충원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머지 않은 때 정수기뿐 아니라 필터분야를 연계할 수 있는 관련 생활가전에 새로 도전할 계획"이라며 "기능에 집중해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낸 영국의 다이슨을 롤모델로 삼아 '글로벌 종합 환경가전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관련뉴스